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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소련간첩 「해리·골드」와 「크라우스·푹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945년 7월 24일 「포츠담」 본회의 끝에 「트루만」미 대통령은 「스탈린」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말투로-꼬치꼬치 질문 당하지 않기를 바라며-미국은 특별한 파괴력을 가진 새 병기를 완성했다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에 대해 「스탈린」은 의례적인 인사말밖에는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스탈린」 태도에, 미·영 수뇌는 「스탈린」은 원폭 같은 혁명적인 병기가 완성된 것은 전혀 모르는 것으로 오해했다. 그러나 과연 「스탈린」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인가? 사실은 「스탈린」은 한달 반전에, 원폭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나 일본에 사용되기에는 늦을 것이란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 그는 원폭개발의 개황 정도가 아니라 「뉴멕시코」에서의 실험성공보고까지 입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폭제조의 모든 자료는 45년 9월 19일에 이미 소련에 들어갔다.
이보다 앞서 44년 1월 어느 날 두 사람의 사나이가 「뉴요크」시 한 모퉁이에서 초면인사를 나누었다. 한사람은 미국인, 또 한사람은 영국 국적을 갖고 있었다. 그때이래 세계의 역사는 크게 변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창백하고 마른 얼굴을 하고 꾸부정한 몸집에 강한 근시안경을 끼고 머리털이 엉성하니 초라한 풍채의 하나이는 「크라우스·푹스」 박사라고 했다. 그는 영국 기술대표단의 일원으로 핵분열 「에너지」를 병기로 개발하는 「맨해턴」 계획에 협력하고 있다고 자칭했다. 또 한사나이는 「해리·골드」라는 화학자였는데 원자력 계획이 얼마나 가공한 것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의 신분을 듣고 적이 놀랐다. 이리하여 소련은 이 두 사람을 통해 원폭의 비밀을 고스란히 입수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6개월간 두 사람은 「뉴요크」에서 몇 차례 만났다. 「히틀러」지배 하에서 탈출한 과학자 「푹스」로부터 「골드」는 원자력의 기술상 각종 자료를 받아 이것을 상관인 소련관리에게 부지런히 전달했다.
이듬해 45년 6월 2일 「골드」는 원폭실험장이 있는 「뉴멕시코」주 「로스알라모스」 근처 소도시 「샌타페」에서 「푹스」로부터 원폭실험의 진척상황에 관한 자료를 받았다.
이때쯤 「푹스」는 극비자료 전부를 직접 볼 수 있는 지위에 올라 있었다. 그야말로 미치광이에게 칼을 쥐어준 격이었다.
약속된 6월 2일 하오 「골드」는 「샌타페」의 약속된 다리 위로 가기 위해 「샌타페」 시가지도를 샀다. 이 지도가 나중에 「골드」를 후회시킬 줄은 몰랐다.
원폭제조자료가 「푹스」로부터 「골드」로 넘어간 것은 45년 9월 19일. 그때까지 3개월 간에 원폭실험성공-원폭 제1호 투하-제2호 투하-소련참전-일본항복으로 태평양 전국은 눈부시게 변모했다.
9월 19일. 「샌타페」의 어느 교회 앞에서 「골드」를 만난 「푹스」는 미국공업의 잠재력을 얕보았으나 그 저력에 놀랐다고 고백했다. 대일 전에는 시간상 이용될 수 없을 것이란 그의 예상이 완전히 뒤집혔으니까. 이 두 사람은 이때 이 장소에서 원폭 「스파이」로서의 중임을 다했다. 그때이래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핵분열의 비밀이 깡그리 도둑맞은 사실이 발각된 것은 그 후 오래지 않은 때의 일이었다.
그러면 「푹스」는 왜 매국노가 되었던가? 그는 소련이 제시한 보수 5백불이 탐이 난 것은 아니었다. 독일인 목사의 아들이었던 그는 청년시대 남몰래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히틀러」의 「나찌즘」에서 정치적 박해를 받고 영국으로 망명, 그 후 「캐나다」로 건너갔으나 영국 관헌에게 억류되어 심한 고문을 당해 영국인의 관용에 환멸을 느껴 마음속으로 복수를 맹세했던 것이다.
「골드」는 가택수색에서 나온 「샌타페」의 지도가 나타났을 때 모든 것을 자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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