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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여류 수필(3)못 가보는 바다-한말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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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름이 되면, 피서 가는 사람이나 안가는 사람이나 한번은 피서를 생각해 보는 것 같다. 어떤 사람에게 피서 갈 거냐고 물으니까 집처럼 시원한 곳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이 시작되어 피서지까지 가는 동안의 차안이나 비행기 속에서의 고생과 시설이 잘된 「호텔」에 든다면 모르되 꾀죄죄한 방한간 얻어 불결한 음식을 먹어 가며 무슨 피서냐고 한다. 그럴듯하다. 어떤 사람은 고생하는 그것이 바로 피서 가는 진미며 「호텔」에서 머무르느니 보다 「캠프」 생활을 해야 피서의 진의를 아는 거라고 우긴다. 역시 그럴듯하다. 피서에는 많건 적건 돈이 드니까 서민층은 피서를 생각할 때는 돈을 잊을 수는 없다.
직장을 가지고 있는 내 친구가 「보너스」 가지고 여름 동안 무엇을 할까 하고 동료들이 모여서 말을 나누는데 아무것도 달갑지 않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일초도 쉬지 않고 자동차로 달리고 싶다고 하니까, 한 사람이 그럴 게 무어야, 안방에서 미끄럼이나 타지, 공연히 돈만 버리지 않느냐고 해서 듣던 사람들이 소리를 내며 웃는데 또 한사람이 벽에다가 풍경화를 주욱 걸어 두면 한결 실감이 날거라고 해서 모두들 뒹굴며 웃었다고 한다. 얘기도 이쯤 되면 다만 웃을 수만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겨울이면 온천, 여름이면 으례 바다로 갔었는데 바다에 가도 모래 뜸질만 했지 물 속에서 놀지는 못했다. 어머니가 엄금하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을 받아 선지 생명에 관한 한 매사에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가면 은근히 비상구 먼저 살펴 두고 시외「버스」 따위는 아예 탈 생각도 않는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인생을 가늘고 길게 살려는 궁상맞은 표본 같기도 하나 사실은 누구보다도 굵고도 길게 살려는 욕심이 크다. 생애의 전반을 터질 것 같은 정열을 안고 조개 껍질 속에서만 살고 온 것 같아 제풀에 화가 나서 피서 행을 마음먹은 지도 벌써 오륙 년은 된다. 고생하는 것이 피서의 진미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멋쟁이는 애초 되지 못하니까 호화판까지는 못되더라도 시설이 좋은 유숙소가 있어야 하겠다. 밀려갔던 피서객들이 되돌아가고 나면 어딘가 해변가에 혼자 가서, 낮에는 물에서 지내고, 밤이면 창을 열고 검고 큰 바닷 소리를 들으며 글이나 썼으면 한다. 해마다 이렇게 계획하면서도 해마다 못 가고 마니까 바다는 점점 더 그립기만 한가 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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