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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밴드 맏형,아이돌밴드에 소송 낸 까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가요계에 또 저작권 소송이 붙었다. 인디음악의 대표주자 크라잉넛과 인기 아이돌 밴드 씨엔블루가 당사자다. TV 음악방송에서 연주를 하지 않고 흉내만 내는 ‘핸드 싱크’ 관행을 들추는 송사이기도 하다.

 크라잉넛 소속사 드럭레코드는 씨엔블루가 저작권·저작인접권을 침해했다며 4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 중앙지법에 냈다”고 13일 밝혔다. 씨엔블루가 2010년 엠넷(Mnet) ‘카운트다운’ 방송에서 크라잉넛의 ‘필살 오프사이드’ 음원을 틀어놓고 퍼포먼스만 해놓고 그 영상까지 ‘씨엔블루 스페셜 DVD’로 제작해 일본에 판매했다는 것이다.

 드럭레코드 김웅 대표는 “이 문제를 제대로 세워놓고 가지 않으면 인디 뮤직을 아무렇게나 흠집 내고 마음대로 갖다 쓸 수 있는 공깃돌 같은 존재로 여길 듯하다”고 주장했다.

 씨엔블루 측과 Mnet의 해명을 종합해 사건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2010년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기원하는 특집이 긴급 편성됐다. 제작진은 크라잉넛이 2002년 월드컵에서 발표했던 응원가를 씨엔블루가 커버하는 무대를 구상했다. MR(반주음악)은 제작진이 준비하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원곡을 듣고 노래 연습만 했어요. 어차피 라이브 연주는 안 되잖아요. 생방송에선 저희 곡도 라이브를 할 수 없는 여건인 걸요.”(씨엔블루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 이상호 이사)

 여러 팀이 한 무대에 차례로 서는 생방송에서 밴드의 라이브 연주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제작진은 MR을 미처 구하지 못해 원곡 음원(AR)을 생방송에서 틀었다. 유튜브에 올라 있는 방송 실황을 보면 크라잉넛의 노래와 연주에 씨엔블루의 목소리가 뒤섞여 들린다. 이상호 이사는 “코러스가 깔린 줄 알았다. 생방송이라 도중에 끊을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엠넷 측은 “저희의 명백한 실수다. 양측 뮤지션에 사과 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림(visual)’만 챙기는 제작 관행에 대한 비판은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예제작자는 “밴드를 불러놓고 소리도 안 나는 악기를 세팅해 놨더라. 방송의 영향력이 크니 할 수 없이 따랐지만 뮤지션들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웃을 수도 울을 수도 없는 우리 음악방송의 한 단면도다. 이쯤 되면 ‘말 달리자’의 크라잉넛이나 ‘외톨이야’의 씨엔블루 모두 피해자인 셈인가.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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