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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기여류수필-수의|천경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밤을 울어대는 여름 귀뚜라미 소리가 시끄럽다. 어떤 잠재의식에서겠지만 어느 여류인사의 허식에 찬 모친 수연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
그리고 어느 여류인사 모친의 화려한 장례식 때의 일이 생각난다.
진수성찬에 요란한 풍악소리…
그 언저리를 에워싼 명사들의 야유에 찬 표정이 수연의 자리였다. 그것이 허식이라면 제단의 향연이 공장가를 방물케 하는 화려한 장례도 분명 허식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양상은 상대적인 대조를 이루지만 일맹상통한 데가 있다. 그것은 자기의 한모습을 나타내려는 PR의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상 한국사람처럼 남의 일에 인색한 사람도 없지만 상대방에 따라서는 축의가 넘치는 일도 드물다. 그리고 남의 죽음에 대해서는 좀더 정확하게 말해서 죽어버린 다음에는 그렇게 관대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일 것이다.
몇 해전 나는 어머니의 회갑을 바람분대로 수원의 아우네 집에서 조용히 치른 일이 있다.
어쩌면 어머니는 그 쓸쓸한 잔치가 한이 되었던지 이따금 섭섭하다는 감정을 나타내실 때가 있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요즈음 어머니와 나는 다정한 시간을 거의 보내지 못했고 때때로 그림이 잘 안 될 때마다 신경질까지 터뜨리니 서운하셨을 어머니의 심경을 생각해본다.
활짝 열린 밀창 옆에서 잠자는 남편 위를 나는 「발레」라도 하는 자세로 가볍게 뛰어넘어 꼼지발을 세워 슥슥 춤추듯 어머니 방으로 건너갔다. 어머니는 여전히 「트랜지스터」를 품에 안고 일어나 계셨다.
『엄마, 담배…』
어머니는 내 손에 「금잔디」 하나를 쥐어 주시며 사위와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하고 걱정스러운…하기야 뻔한 일이 아니냐는듯 살피는 눈초리로 나를 보셨다.
어머니는 우리가 사이좋게 지내길 바라셨다.
그런데 가끔 벌어지는 우리의 부부싸움은 어머니의 뜻을 거역했지만 웬일인지 어머니의 고독을 잠시나마 풀어드린 작용도 했으니 모순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금잔디」 연기를 초조하게 뿜어낼 때마다 뭔지 도취되어 어머니도 같이 연기를 뿜어주시면서 내편이 되어 오래오래 다정하게 대화할 수 있었으니까….
어머니는 고독하신 분이었다.
평생 어떻게 그 수다한 고독을 삼켜 오셨는지…….
『엄마, 수의 만들까……』
벼란 간의 수의소리에 어머니는 의외라는 듯 금시 표정이 굳어지더니 어색한 어조로
『아무 때나 한다냐, 공달이야재…』
실은 어머니는 말을 안하셨지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은근히 수의를 장만해놓은 팔자 좋은 노인네들을 부러워 하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하나도 좋아하신 표정은 짓지 않으셨지만 마음속만은 흐뭇하셨으리라고 짐작하니 나는 뭉클하게 응결된 무엇이 가슴을 내려가는 듯 시원했다.
옆에서 다리미질을 하고 있던 식모가 우리 모녀의 어색하기만 한 정담이 우스웠던지 싱긋싱긋 웃는다.
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면서 다리미질하는 손에 「리듬」이 붙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까와 같이 춤추듯 뛰어 살폿이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남편의 코고는 소리는 점점 높아가고 청승맞은 귀뚜라미 우는 소리는 더욱 쌕쌕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동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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