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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표정] 3. 인도네시아 숨바섬 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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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인도네시아의 숨바섬은 예로부터 산악지대와 해안지대에 사는 부족 사이에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앙숙으로 지내는 두 부족이 1962년까지 서로 적의 머리를 잘랐다는 정부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이 무시무시한 전쟁이 그치게 된 배경에는 사랑과 갈등에 관한 전설이 내려온다.

옛날 옛적, 산악 부족에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집을 떠난 뒤 기약한 날짜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은 채 행방이 묘연했다.

이른 아침, 초원에서 말을 탄 채 창을 던지며 싸우는 의식으로 4일째 날을 맞은 빠솔라 축제.

긴 세월을 기도하며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가 지쳐갈 무렵, 해안 부족의 한 청년이 그 여성에게 반해 사랑을 고백하게 되었고, 그 정성에 감동한 여자가 마음을 열어 두 사람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며 결국 해안지대에 보금자리를 틀게 된다.

전설은 여기서부터다. 죽은 줄 알았던 옛 남편이 돌아와 아내를 되찾기 위해 산악 부족의 남자들을 이끌고 해안으로 갔을 때, 사랑을 나누는 아내와 연인을 본 남편은 관습대로 청년의 목을 자르고 아내를 데려오는 대신, 아내의 행복을 위해 평화의 타협안을 제시한다. 아내를 청년에게 보내고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해안에서 나는 어류의 채취권을 얻은 것이다.

적의 목을 묻은 바위 언저리를 돌며 춤추는 마을 여성들.

이때부터 두 부족은 가슴에 남은 앙금을 삭이기 위해 화살촉을 빼 살상의 위험을 줄인 상태에서 싸움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빠솔라 축제의 기원이라 일컬어진다. 빠솔라는 서로 창 던지기라는 뜻으로, 모내기가 시작할 즈음에 풍년을 비는 의례를 겸해 해마다 열리게 됐다. 이제 사람의 머리를 자르는 일은 사라졌지만, 적의 머리를 걸어놓았던 나무는 남아 그 앞에서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기원하는 의례를 치르고 있다.

축제를 신에게 알리고 무사.무병을 비는 월릭제는 3일동안 계속된다. 첫날, 징과 북소리에 맞춰 여성들이 손에 칼을 세워 들고는 해골을 묻었던 바위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2일 째에는 창을 닦고 전투를 준비하는 의식을, 3일 째에는 물소를 잡아 신에게 바치며 행운과 풍년을 빌었다. 4일째 되는 날, 넓은 초원에 수백 명의 말 탄 사람들이 나무로 만든 창을 던지며 싸우는 모습은 다시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김수남 <경상대 인문학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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