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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사형 선고받고, DJ·노무현도 결국…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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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지기를 후계자로 삼아 대통령으로 만들어도 소용 없었다. 같은 정당 출신이 정권 재창출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신(新) 권력과 구(舊) 권력이 갈등을 빚어 결별하는 악연은 1987년 민주화 이후 26년간 한국 정치에서 반복돼 온 패턴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8년 11월 강원도의 백담사에 쫓기듯 들어갔다. 광주 민주화 운동과 5공 비리에 대한 책임을 묻는 여론을 피해서였다.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지 9개월 만이었다. 직접 후계자로 세운 육사 동기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이 같은 상황을 방조했다. 5공 청산론을 내세워 청와대에 있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가까운 군 출신 인사들을 대거 해임하기까지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다음 정부에서 뒤통수를 맞았다. 그는 자신이 이끌던 민주정의당 등의 힘을 보태 92년 김영삼(YS)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하지만 3년 뒤 YS가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세우면서 사법처리 대상이 됐다. 반란죄·내란죄·수뢰죄로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는 사형이 선고됐다. 이들은 YS가 퇴임 직전 국민 대화합을 명분으로 특별사면해 주긴 했지만 약 2년간 수감생활을 견뎌야 했다.

YS도 김대중(DJ) 정부에서 차남 현철씨 문제로 마음고생을 했다. YS는 평생의 라이벌이자 민주화 운동 동지로 97년 대통령 당선인이 된 DJ에게 한보 비리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던 아들 현철씨에 대한 선처를 부탁했다. DJ는 정부 출범 뒤 사면을 추진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참모들의 반대 등을 이유로 1년여가 지난 뒤에야 잔형 면제를 시켰고, 양김(金) 사이는 틀어졌다.

DJ는 2002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당선인을 나흘 만에 청와대 오찬에 초청하고 “모든 게 잘됐다”며 흐뭇해했다. 하지만 노무현 당선인은 김대중 정부 시절 6·15 남북 정상회담의 대가로 북한에 수천억원을 건넸다는 대북 불법송금 사건에 대한 소신 수사를 주문했다. 집권 후엔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대북 송금 특검법을 발의하자 여당인 민주당과 진보단체의 반대에도 특검을 수용했다. DJ는 이를 강하게 비판했으나 달라진 건 없었다. DJ의 측근인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명박 정부와 사사건건 충돌했다. 국가 기밀인 대통령 당시 기록물을 봉하마을로 불법 유출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 인사들을 대거 교체했다. 갈등은 2009년 부인 권양숙 여사가 금품을 수수한 혐의가 흘러나오고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정점으로 치달았다. 결국에는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란 헌정 사상 초유의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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