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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행협 체결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14년 동안 끌어오던 한·미 행정 협정이 조인되었다. 협정문을 두고 콩이니 팥이니 따지는 것보다 이미 이루어진 것-서로 우의와 선의로써 그 협정을 지켜나가기를 기대할 뿐이다. 그러나 다만 한가지 문제만은 끝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미국인이 생각하고 있는 한국의 행형에 대한 불신적 태도이다. 자기들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형사소송절차나 형 집행 제도는 여러모로 미비점이 많다고 그들은 주장해왔다. 그래서 미국인을 한국의 법정과 감방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번 체결된 행협 내용을 보아도 그런 불신감을 전제로 한 세심한 배려가 엿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 미국 감옥은 한국의 3류「호텔」보다 낫고, 법정 속의 인권은 왕권이 부럽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미국이 일석이조에 그렇게 완벽한 행형 제도를 누리고 산것은 아니다. 「린치」(사형)란 말이 미국에서 생긴 말이라는 사실만 보아도 짐작이 가는 일이다.
16세기말께 미국의 농업가「존·린치」란 사람이 도망친 노예에 하여 가혹한 형벌을 가했다하여 그 뒤부터 그의 이름을 따서「사형」을 「린치」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또 일설에는 독립전쟁직후 「버지니아」주의「찰리·린치」라는 치안 형사가 비합법적으로 즉결 재판을 하고 무고한 사람을 많이 처형했기 때문에 「린치·로」(사형)란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어떻든 「린치」란 말이 미국에서 생겨난 말이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며, 불과 수세기전만 하더라도, 미국의 행형은 그와 같은 「린치」와 대동소이한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서부활극의 영화장면이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그 「린치」의 유습이 아주 근절되었다고도 말하기 어렵다.
미국은 올챙이 때 일을 생각지 않는 개구리처럼 한국의 행형을 지나치게 「크리티컬」한 눈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다. 앞으로 행정협정을 원만히 지켜가려면, 한국의 법정과 행형 제도를 신뢰해 주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편 우리들 자신도 전근대적이고 비인간적이고 비합법적이었던 식민지시대의 일제식「행형」에서 하루속히 탈피해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린치」의 산실이었던 미국이 오늘날 큰소리를 치게된 법치국가가 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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