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EU 연초부터 '무역대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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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변형(GM) 식품 수입에 대한 유럽연합(EU)의 어정쩡한 태도는 불공정 무역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로버트 졸릭 미 무역대표부 대표)

"미국은 인체 유해 여부도 검증되지 않은 GM을 유럽인들에게 강제로 먹이려 하고 있다. 고압적이며 부당한 시장 개방 압력에 굴복할 수 없다."(파스칼 라미 EU집행위원)

미국과 EU가 연초부터 각종 무역 관련 현안을 놓고 격돌하고 있다.

농산물뿐만 아니라 철강.담배.화장품.음반 등 각 분야에서 시비가 벌어지고 있다.

◇불 붙은 무역전쟁=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두 경제권의 '장군멍군'식 무역분쟁에서 먼저 포문을 연 것은 미국이다. 지난 4년여 미국산 GM 식품의 수입 결정을 유예해온 EU에 대해 미 무역대표부(USTR)가 9일(이하 현지시간) 사실상 선전포고를 했다. WTO를 통해 대EU 공세에 나설 의지를 밝힌 것.

그러자 다음날 EU집행위는 당초 2002년 말 종료할 예정이던 외국산 철강 수입에 대한 사전수입감시제도를 2년3개월 연장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USTR 관계자는 "미국을 직접 지목하지 않았지만 감시제도의 주요 대상이 미국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어 EU 의회는 15일 동물 보호 및 학대 금지라는 명분을 내세워 동물실험을 통해 안전성을 인정받은 화장품의 역내 판매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주요 금지 대상이 미국산 제품임은 물론이다.

EU 측의 반격에 미국도 즉각 되받아쳤다. 16일 미 연방대법원은 1998년 제정된 '저작권 시효 20년 연장법'의 합헌 판정을 내렸다. EU 음반업체들의 미국 저작권 침해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미국의 저작권 보호기간이 EU보다 10년 이상 짧기 때문에 지금까지 유럽의 음반 업체들은 미국에서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미국인 저작권 소유 음반을 연간 3억달러어치 이상씩 미국 시장에 역수출 해왔다.

◇배경.전망=전문가들은 무역수지 개선을 통해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려는 두 경제권의 힘 겨루기가 무역 분쟁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경우 90년대 이후 무역수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지난해 국내총생산 대비 경상수지 적자 비율이 위험수위(4%)를 훌쩍 뛰어넘었다.

부시 행정부는 감세안을 골자로 하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으로 내수경기에 불을 지피는 한편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자제시키는 데 경제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EU도 출범 당시의 예상과 달리 성장 부진과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수출 공세를 막지 못하면 만성적인 무역적자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미국과 EU가 상대방을 향해 진검을 빼든 것은 전세계적인 파급 효과 때문이다.

GM 식품과 관련된 미국의 대EU 공세에는 "유럽이 금수조치를 풀면 EU의 영향력이 높고, 식량이 부족한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수입 허가를 쉽게 얻어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이 때문에 미.EU 간의 무역분쟁은 앞으로 업종 전반에 걸쳐 더욱 거세지고, 주변 경제권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미국은 EU와 주요국을 대상으로 적용했던 철강 세이프가드를 조만간 멕시코.베트남 등 중남미와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에 확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봉수 기자

<미.eu 무역분쟁 일지>

1. 9 미, EU의 GM 식품 수입 유예를 WTO에 제소키로 결정

1.10 EC, 미국의 철강 세이프가드에 맞서 사건 수입 감시제도를 2년3개월간 연장

1.14 EU 의회, 미국 등 항공업계에 불공정 정부 지원을 하는 국가에 경제 제재 결의

1.15 EU 의회, 동물 실험 안정성 검사를 받은 화장품의 역내 판매 금지 결정

1.15 EU 법원, EC의 미국 내 소송 취하를 원하는 미 담배 회사들의 청원 기각

1.16 WTO, 미국의 반덤핑 및 상계관세 관련법인 버드수정안의 철폐 판정

1.16 미 연방대법원, '저작권 20년 연장법안'의 합헌 판결

*현지시간 기준, 외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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