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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갈라파고스’ 자초하는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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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심재우
경제부문 기자

지난달 30일 일본 도쿄 빅사이트 전시장에서 막을 올린 ‘나노테크2013’. 이 전시회는 2001년 당시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이 나노기술에 집중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히자 일본이 부품·소재 영역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2002년 발 빠르게 만든 전시회다. 올해로 12회째를 맞는 나노테크 전시회에 올해에도 1300여 개 사가 참여하고 6만여 명이 입장하는 등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그러나 개막일에 맞춰 나노테크2013 현장을 방문한 기자의 눈에 명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 여럿 눈에 띄었다. 23개국에서 266개 사가 참여하는 글로벌 전시회인데도 불구하고 안내문과 자료 등이 일본어 위주로 제공됐다. 간혹 한글과 영어가 일본어 밑에 병기돼 있는 곳도 있었지만, ‘접수’가 ‘점수’로 오기되는 등 성의 없이 만든 흔적이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특히 일본 업체의 부스에서 영어로 된 자료를 찾기는 무척 힘들었다. 또 ‘설명원’이라는 명찰을 단 부스 관계자들의 영어 실력 또한 훌륭하지 않아 나노 강국으로 꼽히는 일본의 기술 수준을 쉽게 짐작하기 힘들었다.

 나노는 물론 전자·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기술력은 여전히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기술 공개는 물론 교류조차 꺼리는 일본 산업계의 독특한 배타성을 또다시 절감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 요즘 떠오르는 화두가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다. 자신에게 모자라거나 혁신이 필요한 영역이 있으면 상대가 대학이건 기업이건, 내국인·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협업하고 아웃소싱하는 게 트렌드로 굳어지고 있는 시대다.

 이번 나노테크2013에 참석한 한국 기업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협업할 파트너를 찾기 위해 온종일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오픈 이노베이션’에 훨씬 적극적인 한국이 전시회에서조차 자신들의 첨단기술을 꽁꽁 감추려는 듯한 일본을 머지않아 따라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커졌다.

심재우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