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엔화 대출 5년 악몽 김 사장…이젠 “언제 갚을까” 고민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엔저 여파로 일본인 관광객이 줄고 있다. 25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면세점에서 만난 한 일본인 관광객은 “엔화값이 싸지면서 아무래도 물건을 예전보다 덜 사게 된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경북 지역에서 생활용품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김모(45)씨는 요즘 두 발을 뻗고 잔다. 2008년 7월 엔화 대출을 받았다가 마음고생을 심하게 해 온 그다. 당시 그는 100엔당 환율 940원대로 우리 돈 3억원(약 3200만 엔)을 빌렸다. 그해 3분기에 엔고로 원화가치가 폭락하며 한때 이 빚은 5억원대로 불었다. 그는 “요즘 3억원대로 빚이 줄어 숨통이 트였다”며 “엔화가치가 더 떨어진다고 하니 언제 빚을 갚아야 할 지가 새로운 고민”이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엔저 국면을 맞아 금융 시장도 분주하다. 일부 은행은 해묵은 숙제였던 엔화 대출 청산을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증권사는 엔저를 활용한 새 투자처를 부지런히 발굴하고 있다.

대구은행은 연말까지 엔화 대출 보유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통화전환 우대 서비스를 한다고 25일 발표했다. 엔화 대출을 원화 대출로 바꾸면 환전 수수료를 최대 70% 깎아주겠다는 것이다. 원화 대출 금리도 1.0%포인트까지 추가로 깎아준다. 우리은행도 이달 초 “중소기업인에게 무상으로 엔화 대출을 원화 대출로 변경해 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은행이 이런 이벤트에 나선 건 지금이 애물단지 엔화 대출 청산의 기회라고 보기 때문이다. 낮은 금리와 엔화가치 하락 가능성 등을 내세워 2007년께 큰 인기를 끌었던 엔화 대출은 이후 엔고로 원화가치가 폭락하면서 대출자나 은행 모두에 큰 짐이 됐다. 몇 년 사이에 빚이 50% 이상 불어난 대출자들은 “못 갚겠다”고 곡소리를 냈고, 은행은 “만기를 연장해 주겠다”며 수년간 이들을 달래왔다. 이석훈 대구은행 여신마케팅기획부장은 “앞으로 엔저가 지속될 가능성도 있지만, 위험을 회피하려 하는 대출자라면 일부라도 원화로 바꿔놓는 게 상책”이라며 “엔화가치가 더 떨어지면 수출업체의 타격도 만만치 않은 만큼 정부가 환율 시장에 개입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구본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본 정부가 7월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상반기까지는 환율 시장에 강하게 개입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당분간 엔화가치는 약세를 유지할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엔화 대출을 좀 더 보유하는 게 유리한 환경”이라고 조언했다. 외환당국이 2010년 이후 해외에서 쓸 돈이 아니면 외화 대출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제하면서 추가적인 엔화 대출 문의는 끊기다시피한 상황이다.
증권가에선 일본 증시를 주목하고 있다.

▶엔화 약세 덕분에 일본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강화된 데다 ▶해외 관광객이 큰 폭으로 늘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짐 오닐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 역시 “일본 증시는 가격 메리트와 엔저 현상으로 2013년 가장 매력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도쿄 시장의 닛케이225지수는 지난해 10월 25일 9055.20에서 이달 25일 10926.65로 뛰며 석 달 만에 20.7% 상승했다.

최근 일본 펀드의 수익률은 해외 펀드 중에서 가장 돋보인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5일 기준 일본 주식형 펀드의 최근 3개월 평균 수익률은 15.4%다. 해외 주식형 펀드 중 최고다. 일본 펀드는 5년 평균 수익률 -35.2%, 3년 수익률 -2.2%로 한동안 증권 업계의 골칫거리였다. 펀드별로 ‘미래에셋재팬글로벌리딩증권투자신탁 1(주식)종류A’가 3개월 수익률 20.05%로 가장 높았다. ‘ING파워재팬증권투자신탁 1(주식)종류A’(3개월 수익률 19.78%), ‘신한BNP파리바 Tops 일본대표기업증권투자신탁 1(주식)종류A1’(19.48%), ‘슈로더재팬알파증권투자신탁(주식-재간접형)종류A’(18.33%)가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엔저로 인해 일본 증시가 당분간 강세를 보일 순 있지만 장기적인 추세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일본 경제가 살아나는 분위기가 아닌 데다 엔저가 장기간 이어지면 경제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범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은 “엔화가치가 더 내려갈 가능성을 감안하면 단기적인 투자는 유망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엔화가치가 심하게 내려가면 국채 수요가 줄어들면서 국가 부채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장기 투자는 매력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선환 외환은행 홍보부장은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중앙은행 총재의 임기가 4월 끝나는데 후임 총재가 아베 신조 총리의 엔저 정책에 지금처럼 협력할지는 미지수”라며 “수출에 타격을 입는 강대국의 항의 때문에라도 일본 정부가 장기간 그런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본 증시에 투자했다 수익을 내더라도 원화 강세로 인해 환차손을 입을 수 있는 만큼 환헤지는 필수다. 이승우 KDB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일본 증시에 투자한다면 환율이 급변하는 경우에도 환차손을 입지 않도록 환헤지가 돼 있는 상품인지를 꼭 체크해야 한다”며 “회사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기 힘든 만큼 일본 증시에 직접 투자하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