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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댈러스 사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보그스위원은 이 위원회가 최종결정을 내릴 때 만강일치였다고 말하고 최종단계에 의견이 엇갈렸다는 에프스타이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나 이 결정적인 점에 대해 보고서가 불투명한 이유는 다음과 갈다 ⓛ 코넬리지사가 직접 대통령 목에 맞은 총탄에 부상을 입을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②검시관 훔즈 핀크양의사는 동일한 총탄에 양인이 부상을 입을 수 없었다고 증언했으며 FBI의 탄도전문가 플라이저도 동일한 증언 ③FBI는 64년1월11일 보충보고에서 손가락 길이정도밖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밝힌 점 ④63년l2월18일 워싱턴 포스트 및 기타 신문들이 댈리스의 소문을 근거로 1탄이 대통령 어깨 깊숙이에서 발견됐다고 보도됐으며 이 보도는 사건이 FBI에 의해 확인됐다는 것. 이같은 점으로 보아 위르위원회의 주요한 결론에 상당한 의문이 생기지않을 수 없다.
전문위원인 래드리히는 『양인이 각각 다른 총탄에 맞았다는 것은 곧 두명의 암살자가 있었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말하고 있다. 7명의 의원과 34명의 전문위원들이 조사에 참여했는데 「에프스타인」에 의하면 『암살의 근본적인 사실들을 확정하는 일은 단 한사람 알렌 스펙터 변호사가 말했다』 고한다. 그는 산더미 같은 서류를 읽고 증언내용을 분석했지만 그 자신 독자적으로 한 것은 28명의 의사와 댈러스시의 파블랜드 병원의사들과 「인터뷰」한 것 이외는 별 다른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같이 거의 단독으로 조사가 됐을 뿐아니라 더구나 놀랄 일은 다른 전문위원과 마찬가지로 「스팩터」는 64년6월1일까지 모든작업을 끝내라는 위원회의 끊임없는 압력을 받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데드라인]은 지켜지지 않았으며 워르대심원사는 전문위원 증 책임자 윌롄스에게 즉각 조사업무를 종결하도륵 요구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맥조지 번그대통령 지별보좌관과 다른 위원들이 대통령선거에 앞서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7월15일에서 8월1일 또다시 9월로 연기됐다. 스펙터는 마침내 한방의 총알이 양인을 부상케 했다는 이론을 전개했으며 이 가설을 입증하는 증거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에프스타인과 웨이스버그는 오즈웰드가 사용한 소총으로는 길어야 2초 미만이라는 순간에 2발을 쏠 수 없었기 때문에 1탄론을 내세워 사건을 신속·간단하게 처리함으로써 제2의 암살자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시켰다고 주장한다. 워린보고서가 작성된 과정이나 증언내용의 상충이 있었다곤 하더라도 이들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제2의 암살자가 있었다는 가설을 전제로한 가정에 불과하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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