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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만화 아류' 만화계 고질병

중앙일보

입력

만화계의 끝을 모르는 침체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불황을 헤쳐나갈 묘안은 없을까.

지난 14일 한국만화가협회가 주최하고 문화관광부가 후원한 '만화산업대토론회-한국 만화 어디로 가나'가 열렸다. 협회가 정한 '만화의 날'(11월3일) 을 계기로 잡지 폐간이 잇따르는 등 날로 갑갑해지기만 하는 현실에 대해 의논해보자는 자리였다.

이날 토론은 출판사와 작가의 '자성'이 주조를 이뤘다. 불황의 '범인'으로 공통적으로 지적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일본 만화가 만화를 향유하는 계층을 넓히는 긍정적 기능도 했지만 과도한 수입으로 결국 우리 만화를 위축시켰다는 주장이다.

세종대 한창완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심의한 일본 만화는 해적판을 제외하고도 3천6백41종이다. 1999년의 2천6백20종에 비해 엄청나게 증가한 수치다.

연재되는 일본 만화 역시 만화잡지당 평균 4~5편이다. 작가 윤태호씨는 "국내 작가들이 게재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히트한 일본 만화의 경향을 따라 하라는 주문이 뒤따른다"며 "아류작이 양산되다 보니 작품의 질이 하락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따라하다 보니 어느새 독자들은 일본 만화 쪽으로 도망을 쳐버린 악순환이 거듭된다는 말이다.

둘째는 기획력.마케팅의 부재다.일반 출판사와 비교할 때 현저하게 떨어지는 마케팅 능력은 작가들에게서 "과연 만화를 팔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애니메이션 등 관련 분야까지 아우르는 기획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만화기획자 박성식씨는 "전략적이고 목적의식적인 기획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서 '만화산업'이라는 말을 쓰기가 부끄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만화평론가 이명석씨가 "4대 출판사끼리 차별되는 특색이 거의 없다"고 한 지적도 귀기울일만 했다.

두 가지 모두 작가와 출판사의 '자승자박'이라는 비난을 면키 힘들다. 만화계 종사자들이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출판사는 '천계영같은 스타 작가가 10명만 나왔으면'하는 막연한 아쉬움만 가득했고, 작가는 도서대여점 등 외부 환경을 탓하느라 작품 개발을 게을리했다.

불황의 원인에 대해 반성하고 공감했다면 이제부터 체질개선이 시급하다. '유도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만화 대사도 있지만 묘안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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