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건 만큼만 울고 싶다면… 아다치 미츠루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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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만화열전을 시작할 때 다뤘던 작품이 아다치 미츠루의 〈H2〉였다. 여러 다양한 만화들을 보아왔지만 〈H2〉를 접했을 때의 느낌은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구할 수 있는 한 그의 작품을 모두 찾아서 보려고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정식 발간되어 있지 않은 해적판까지 보게 되었다. 아다치 미츠루는 전혀 변화무쌍한 작가는 아니며, 뭔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게 하는 작가도 아니다. 다만 보고 나면 ‘역시 배신하지 않는군!’이란 감탄사를 나오게 하며, 그저 그대로만 있어주면 좋은 그런 작가다.


근친상간적 소재는 영화든 만화든 소설이든 논란이 되기 마련이다. 어떤 쪽으로 상상하든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금지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작품들을 보기란 심히 어렵다. 그럼에도 어째서 이런 작품들까지 판매 되지 못하나 안타까울 따름이다.
〈미유키〉 〈진배〉 모두 사람의 이름이다. 둘 다 혈연관계가 없는 가족이면서 남녀인 두 사람의 이야기다. 먼저 〈진배〉.

딸 하나를 데리고 재혼한 여자의 남편 진배, 그러나 여자는 1년 반 뒤 죽어 버리고, 이름뿐인 딸 미현과 아버지만 남았다. 진배 씨는 고교생인 딸에게 늦은 시간 걸려 온 남자친구의 전화를 바꿔주며 누구냐고 물어볼까 말까 망설이고, 딸은 예상대로 ‘상관 없는 일이잖아요.’라고 말한다.

요즘 미현이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뜨개질을 배운다며, 미현의 남자 친구라고 소개하는 귀여운 소년에게 미묘한 질투심을 느끼는 진배 씨. ‘내 딸의 남자 친구가 되려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해 보라’며 축구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년의 실력을 평가하고자 하고, 과거 골키퍼였던 그는 골대 앞에서 말할 수 없는 무게감으로 그 녀석을 눌러버린다. 그리고 어느날 늦은 시간 귀가하는 딸에게 화가 난 진배 씨는 자신도 모르게 딸의 뺨을 때리고, 울컥 눈물 한 방울을 비친 딸은 어렵게 뜬 스웨터를 휙 던지고 방문을 닫아버린다.
딸은 결국 친 아빠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둘의 만남을 예고하는 마지막 장면이 여운을 남긴다.


〈미유키〉는 좀더 복잡하다. 1980년부터 4년간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좀 오래된 그림체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터치〉나 〈H2〉와 비슷한 느낌을 주면서도 뭐랄까 좀더 애틋한 감동을 준다.
아버지가 재혼한 여자의 딸인 미유키. 어린시절 잠깐 같이 살던 여동생 미유키가 미국에서 돌아온다. 물론 이미 새어머니는 돌아가신 상태고, 아버지는 여전히 여기저기 전세계를 돌아다닌다. 여동생과 둘이 살게 된 마사토. 마사토는 고교에 입학하면서 알게 된 여자 친구 미유키와 동명이인인 여동생 미유키 사이에서 ‘내가 좋아하는 건 미유키야. 엉? 그 미유키가 아니고…’. 스스로의 감정에 헷갈려 하면서도 ‘동생이니까..’라고 위안하며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으로 그녀를 보살핀다. 짐짓 오빠로써 짧은 치마와 비키니를 걱정하기도 하고, 혼자 기다리고 있을 동생을 위해 생일 집에서 늦은 시간 뛰쳐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동생으로써 그녀를 보내려던 날, 그는 그 동안 미루어 왔던 마음의 결정을 하게 된다.
“오늘은 정말 기쁜 날입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여동생과 친구의 결혼식 날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그녀는 나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사토의 눈에 맺힌 한 방울 눈물과 저녁 노을 가득한 바다에서 손을 잡고 걷는 어린 연인의 모습은 눈에서, 가슴에서, 떠나지 않고 내내 마음을 울렸다.

아다치 미츠루는 현재 조금쯤은 가볍고, 재미있는 이야기인 〈미소라〉를 연재 중이다. 아직 만나지 못한 분들이 계시다면 다시 한번 기꺼이 권하고 싶다. 물론, 우선 미소라 보다는 〈H2〉와 〈터치〉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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