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의 입' 9년] 13. 새마을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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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1970년대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오른쪽)이 새마을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한 농촌을 방문해 벼 작황을 살펴보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정열적으로 추진하지 않은 시책이 어디 있었으랴만 박 대통령은 그 중에서도 새마을운동에 각별한 정성을 쏟았다.

1972년 4월 26일 박 대통령은 전남 광주에서 열린 전국 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직접 메모한 내용을 중심으로 즉흥연설을 했다. TV로 생중계된 이 연설은 참으로 듣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연설이었다. 미국 사람들은 남북전쟁 때 링컨 대통령이 민주주의 원리를 설파한 게티스버그 연설을 명연설로 꼽는다. 나는 박 대통령의 연설도 그것 만큼이나 훌륭한 연설이었다고 믿는다. 그 연설은 잠자고 있던 농촌의 혼을 일깨웠다.

박 대통령은 연설 서두에서 "이제는 농촌 개발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을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 이면에는 61년 5.16 직후 최고회의 시절부터 몇 차례 실패의 고배를 마셨던 농촌 개발의 역사, 그리고 여기서 교훈을 얻어 본인이 창안한 독창적 개발전략 등에 대한 감회가 서려있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농촌 근대화는 8.15 광복 직후의 농지개혁에서 시작되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야기된 인플레이션 때문에 지가(地價)증권은 휴지가 돼버렸다. 그래서 토지자본을 상업자본으로 전환하려는 정부 방침은 수포가 되었다. 그때부터 농촌 개발은 계속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고 있었다. 최고회의도 이 구두선을 되풀이 했다.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은 서구에서 태동한 후진국 개발이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었다. 그것은 농업을 먼저 개발.발전시킨 다음에 그 힘으로 공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 논리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투자효과가 1년에 한 번밖에 나지 않는 농업의 발전을 언제까지 기다려 공업을 발전시킬 것인가. 그것은 현실적으로 당치도 않는 헛소리라고 판단했다. 현실주의자인 박 대통령의 이 판단은 당연한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서구적 후진국 개발이론을 거꾸로 적용해야 한다고 결심하고, 먼저 경공업 발전과 수출 제일주의로 시책의 초점을 전환했다. 이것이 효력을 발생하자 박 대통령은 거기서 얻은 힘으로 농촌을 개발해야 한다고 달라붙은 것이다.

박 대통령은 1,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이 우리 농민에게 커다란 자극을 주었다고 지적하고, 새마을운동은 지금까지의 환경 개선에서 소득 증대 운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며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새마을운동이 각자의 소득을 증대시키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대통령의 입을 통해 직접 듣게 되자 새마을 지도자들은 흥분했다.

박 대통령은 또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이냐'는 인생의 근본문제에 대한 자기의 신념을 서슴지 않고 밝혔다. 그것은 "보다 여유있고 품위있고 문화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며 "당장 오늘의 우리가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일의 후손이 잘 살 수 있는 고장을 만든다는 데 보다 큰 뜻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진 전 청와대 대변인·문공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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