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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수로 존폐 위기

중앙일보

입력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에 이어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이 14일 북.미 기본합의서(1994년 10월.제네바)를 다른 협정으로 대체할 가능성을 시사함에 따라 대북 경수로(輕水爐) 건설공사의 순항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1천MWe급 경수로 발전소 2기를 짓는 사업의 근거가 존폐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사업을 추진해온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고위 관계자는 15일 "부시 행정부의 제네바 무효화 언급은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지 못한 데 따른 결함을 지적한 것"이라며 "현재까지 경수로 공사와 관련해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도 "합의 위반에 따른 북한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지 핵합의의 종결을 선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어느 일방의 선언으로 하루아침에 합의가 파기되는 게 아닌데다 북한 측의 반응 등을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KEDO 집행이사국인 한.미.일과 유럽연합(EU) 측은 이사회 개최 문제 등을 긴밀하게 협의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97년 8월 부지정리공사로 시작된 경수로 지원사업은 현재 27%의 종합공정 진척도를 보이고 있다. 공사가 중단되면 2백70만평의 부지 내에 들어선 이런 시설들이 흉물로 남게 된다. 함경남도 금호지구(신포시 일대)의 현장에서는 15일에도 우리 근로자 7백여명과 북한인력 1백명, 우즈베키스탄 인력 6백여명이 정상작업을 했다.

공사 중단사태가 빚어질 경우 특히 문제가 되는 대목은 총 46억달러의 예상사업비 가운데 이미 투입된 10억달러. 한국은 이 가운데 7억달러를 분담했으며, 이를 위해 1조2천1백97억원의 국채까지 발행했다. 북한이 3년거치 17년 분할상환(무이자)으로 갚게 돼 있지만 도중하차할 경우 문제는 복잡해진다.

이런 사정 때문에 북.미 간의 제네바 기본합의의 무효화 논쟁에도 불구하고 경수로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는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정부 당국자들은 말한다. 경수로를 대체할 에너지 지원방안 등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은데다, 엄청난 재원과 인력이 소요되는 경수로 공사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얘기다.
이영종 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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