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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사업, 산업 넘어 국방까지 위협할 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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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호 08면

일제 이후 100년 만에 한반도를 정밀측량하는 국책사업을 벌이고 있는 김영호(59·사진) 대한지적공사 사장은 “우리는 이미 세계 최대의 측량기관으로 성장했다”고 자랑부터 했다. 지적공사는 지난해부터 ‘지적재조사에 관한 특별법’ 시행으로 2030년까지 총 1조3000억원을 들여 한반도(북한 지역 제외) 지형을 디지털화하는 측량작업에 나서고 있다. 김 사장은 “고난이도의 3차원(3D) 정밀측량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측량을 활용한 공간정보의 수집·가공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적공사는 세계적 문화재급인 로마 교황청의 바티칸 성당과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3D 측량을 위한 협상도 벌이고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 이미 명동대성당 등 각종 문화재급 26곳을 3D 측량했다. 최근 화재로 손실된 내장사 대웅전도 지적공사에서 3D 측량을 해 놓은 곳이라 앞으로 복원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전망이다. 다음은 김 사장과의 일문일답.

100년 만에 한반도 정밀측정하는 대한지적공사 김영호 사장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지적재조사 사업에 국민적인 관심이 크다.
“과거에는 측량을 하면 모눈종이에 일일이 다 그려 넣었다. 대지는 1200분의 1 축적으로, 임야는 6000분의 1 축적으로 그렸다. 세월이 흘러 홍수 등으로 물줄기가 바뀌고 산기슭이 깎이기 때문에 그 같은 편차로 인한 분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6·25 때 훼손돼 적당히 그려 놓은 것도 적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적도 종이가 변형돼 토지 분쟁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 모든 측량정보가 수치로 디지털화돼 영구적으로 그 같은 문제는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지적재조사 사업으로 잘못된 토지 경계를 모두 바로잡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수치로 디지털화된 지적도는 전체의 5%에 불과하다. 95%가 종이 지적도다. 특히 지적도와 현장이 일치하지 않는 이른바 ‘지적 불부합지’가 14.8%에 이른다. 이들 지역은 토지 경제 분쟁으로 재측량과 소송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만도 연간 3800억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런 지역을 우선적으로 디지털 작업화하고 있다. 올해는 215억원을 투입해 전국 210여 곳의 시·군·구 지역에서 정밀측량작업을 할 계획이다.”

지적공사는 3차원 정밀측량을 통해 각종 문화재의 기록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지상레이저측량기로 작업하는 장면.

건축물 지하공간까지 측량해 지도화
-이번 사업과 병행해 추진되고 있는 것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대표적인 게 각종 건물의 지하지도를 함께 만드는 작업이다. 단순히 건물만 측량하는 게 아니라 그곳의 지하층 공간도 측량하는 작업을 한다. 지적재조사 사업에는 평면 측량만 규정돼 있지만 지적공사가 향후 융합적인 공간정보사업을 위해 자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건축물의 지하 도면은 소방 안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쓸모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공간정보연구원을 설립했다. 올해는 연구원도 20명을 더 뽑아 총 40명으로 늘렸다. 공간정보사업은 유엔에서도 관심이 많다. 재난지도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지도·식량지도까지 다양하게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적공사는 소방방재청과 협력해 침수흔적도를 만들고 있다. 태풍·호우·해일 등 풍수해로 인한 침수 흔적을 현장 조사하거나 피해 직후의 항공사진 촬영을 통해 침수영역 등을 수치지형도로 표시하고 있다. 폭우가 시간당 얼마나 쏟아지는지를 알면 침수흔적도를 통해 몇 시간 뒤 어느 지역까지 피해가 올 것이라는 걸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또 민관 공동으로 ‘V월드사업’을 하고 있다. 지적공사와 함께 NHN·다음·KT 등이 공동 출자해 공간정보산업진흥원을 만들어 구글보다 더 정밀한 지도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지도정보사업 경쟁이 치열하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GPS 사업을 탈피하기 위해 새로운 위성을 쐈다. 위치정보는 산업을 넘어 국방 문제까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을 주도할 만한 우리의 경쟁력은 뭔가.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공간정보 앱 서비스 기술 등은 세계 시장을 선도할 만한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공간정보 시장은 2010년 기준으로 89조원에 이른다. 2015년에는 150조원으로 연평균 11%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국내 시장은 현재 약 3조원 규모로 세계 시장 점유율 8위(3~4%)를 차지하고 있다. 공간정보산업은 일자리 창출 등 전후방 효과가 커 신성장동력 업종으로 각광받기도 한다. 지적공사는 공간정보산업 발전을 위해 올해 이 분야의 연구개발에만 100억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우리의 측량 기술력은 선진국인 호주·스웨덴·네덜란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특히 지적공사에서 자체 개발해 쓰고 있는 토털측량(전자평판측량) 기술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 해외에도 많이 보급돼 있다.”

-숭례문 복원사업에도 지적공사가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문화재의 기록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세계적인 수준의 3차원 정밀측량기술과 인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3차원 정밀측량기술은 초당 5만 개의 레이저 빔을 발사해 ㎜ 단위의 정밀한 위치 좌표를 얻을 수 있는 최첨단 측량방법이다. 이렇게 얻은 수억 개의 점군(Point clouds) 자료를 3개씩 모아 삼각망 생성작업을 한다. 여기에서 나오는 이미지를 사진 등과 합성해 보존용 모델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이를 바탕으로 명동성당과 숭례문뿐만 아니라 세계 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의 화서문, 방화 수류정, 화홍문 등을 정밀측량해 디지털화했다. 또 고창 세계문화유산 고인돌, 동해 촛대바위, 영월 청령포 등 주요 자연물을 측량해 보존 관리 및 안전진단에 필요한 정밀 데이터를 확보했다.”

자메이카·라오스 등 해외사업 활발
-우리 국민은 일제 때 토지조사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다.
“일본이 착취를 목적으로 측량한 지적도를 가지고 우리가 오늘날까지 쓴 셈이다. 1910년 초부터 일제는 식민지 경영을 위해 토지조사를 했다. 일본에서 돈을 가져와 산업화한 게 아니라 한국의 땅주인에게서 세금을 받아 자본화하려 했다. 한문을 모르면 토지대장 양식을 쓸 수 없게 만들어 놨다. 또 악덕 양반지주의 도장을 받아야 등록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많은 양민이 양반지주와 일본 총독부에 억울하게 땅을 빼앗겼다. 토지조사 과정에서 일본 총독부에 몰수된 땅만도 전체의 46%에 이르렀다. 이런 역사적 아픔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적공사는 항상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세로 일을 하려 한다. 부동산정보 무료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기획부동산 등 땅 사기를 당하지 않게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지적공사의 홈페이지(www.lx.or.kr)에 들어가 지번으로 신청을 하면 직접 찍은 현장사진, 항공사진, 연속 도면을 보여 주고 사기를 당하지 않게 자세한 설명도 해 준다.”

-연매출 4800억원으로 무차입 흑자 공기업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적공사의 사업 독점 문제도 거론하고 있다.
“측량사업 특성상 독점적 지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편차가 있는 종이 지적도 때문에 재산분쟁 등이 많아 공신력 있는 기관이 필요했다. 하지만 측량정보가 점차 디지털화돼 이런 문제가 많이 사라졌다. 앞으로는 민간이 잘할 수 있는 분야는 과감히 개방할 예정이다. 평촌·일산 등 전국의 약 5%는 지적도가 이미 디지털화해 민간에 개방돼 있다. 향후 지적도의 디지털화 작업이 확대되는 대로 추가로 더 늘릴 방침이다. 현재 측량비는 공시지가에 연동돼 있다. 이렇다 보니 산지 측량 등 땅값이 싼 지역은 측량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땅값보다 측량비가 더 비싸게 먹힐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런 부분은 민간이 기피하고 있다. 지적공사는 국민 편익적인 서비스 차원에서 서비스를 강화할 방침이다.”

-최근 해외사업도 많이 하고 있는데.
“한국이 경제 발전을 빨리 할 수 있었던 것은 측량기술의 발달도 한몫한 것으로 해외에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기술 지원을 많이 요청한다. 2006년부터 라오스·베트남·모로코 등 10여 개국에서 각종 사업을 추진했다. 자메이카에서는 공적개발원조(ODA)의 일환으로 측량을 통한 토지관리사업을 해 줬다. 이 나라는 노예 출신이 많다. 내 땅을 갖고 싶어 하는 열망이 그만큼 크다. 우리가 측량을 해 토지 등기등록증을 발급해 주자 펑펑 울면서 고마워했다. 투르크메니스탄과는 토지측량사업(약 50억원)을 하고 있다. 지적공사는 측량기술과 정보기술(IT)을 융합해 해외시장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또 다른 미래 역점사업은 뭔가.
“현재 정부가 검토 중인 해양 지적도 사업에 역점을 둘 방침이다. 우리나라의 해양영토는 육지 면적의 4.5배로 총 44만㎢다. 현재도 국가 간 해상경계 설정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간에도 해양영토의 이용과 개발을 둘러싸고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항만시설 입지 분쟁, 어업권 분쟁, 폐기물 매립지 관할 분쟁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양영토의 도면화 작업이 시급하다.” 



김영호 사장 서울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한 뒤 제18회 행정고시 합격. 충북 부지사, 행정안전부 제1차관, 법무법인 세정 고문 역임. 2010년 대한지적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뒤 ‘지적재조사에 관한 특별법’으로 100년 만에 한반도를 정밀측량하는 국책사업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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