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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벌의 명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이력서를 들추어보면 거의 맹장처럼 따라다니는 형식적인 난하나가 있다.
그것은 상벌의 행목, 대부분은 으례「공히 무함」으로 되어 있을 경우가 많다.
상을 탄다든지 벌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흔치않은 일이다.
흔치않은 일이기 때문에 세인들의 이목을 끄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상벌의 시행에는 잡음도 많다.
상을 받아야할 사람이 벌을 받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또 벌울 받아야할 자가 상을 타는 일도 없지않다.
상벌의 제도가 문난한 것이 곧 사회의 무질서를 의매하는 것이라해도 과언은 아니다.
세계적인 보증서가 붙은「노벨」상 만해도 말썽이 많다.
「버너드·쇼」에게「노벨」상을 주자 그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작품을 쓸때는 주지않더니, 글을 쓰지않고 쉬고 있으니까 상을 주는군! 내가 글을 쓰지않았다는 것이 그들의 마음에 든 모양이야』.
「쇼」옹의 익살만이 아니다.
「파스테르나크」,「사르트르」등등의 수상자들이 상을 거부하여 말썽을 일으켰던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아세아영화제의 시상식이 끝나자 이번에는 또「5·16민족문화상」의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5월은 상의 계절, 신록「시즌」에 어울리는「뉴스」들이다.
그러나 상의 뒷 공론들은 그렇게 감매한 것만은 아니다.
아세아영화제의 상이 상업성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거나, 사전 묵계에 의한 정략성이 개재되었다거나, 다방참새족들의 입이 한창 바쁜모양이다.
아세아영화제가 상업주의적 상이라는 여론과 대조적으로 5·16민족문화상은 정치냄새가 짙은상이라고 평하는 사람이 있다.
상을 받은쪽 보다 주는 쪽의 인상이 그리고 그 상의 이름이 아마 그런 냄새를 풍겨주는 것같다.
실상「존슨」이나「드·골」이나「윌슨」이 앞장을서서 문화상을 주는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않는다.
정말 거족적인「민족문화상」제를 수립하려면 되도록 정치인은 뒤에 물러서있고「문화인을 위한 문화인에 의한 문화인의 상」으로 맡겨두는 것이 어떨까?
진실로 정치인들에게 당부하고싶은 것은 상은 너무황송하고, 문화활동을 위축케하는 억울한 그 벌만이라도 내려주지않는다면 고맙고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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