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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끌어 안은 내공의 힘 '달마야 놀자'

중앙일보

입력

스님과 형님이 '맞짱'을 뜨는 '달마야 놀자'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조직폭력배(조폭) 와 승려들이 모양 좋게 어울리는 코미디다.

세상살이와 동떨어진 고요한 산사를 무대로 단순과격한 '형님들'과 심신수행에 정진하는 '스님들'이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을 벌이다 서로를 포용해가는 과정을 경쾌하게 낚아챈다.

그만큼 아이디어가 발칙하다는 얘기다. '신라의 달밤'의 이원종, '엽기적인 그녀'의 김인문, '조폭 마누라'의 박상면, '킬러들의 수다'의 정진영 등 최근 잇따라 히트한 코미디에서 감칠맛 나는 연기를 보여준 개성파 배우들이 집결했다는 점도 재미있다.

하지만 도착 시기가 다소 늦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준다. 지난 여름부터 극장가를 줄기차게 웃겨댔던 코미디 열풍의 막바지 대열에 합류, 이들 영화들을 섭렵한 관객이라면 식상해 할 수도 있다.

'달마야 놀자'의 무기 또한 전작 코미디들과 비슷하게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연속되는 가운데 터져나오는 휘발성 웃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달마야 놀자'는 귀엽다. 요즘 한국영화의 주요 코드인 조폭을 소재로 하되 조폭에서 연상되는 주먹질.칼질 등의 험악한 액션이나 충성.배신 등의 상투적 주제를 자제하고(물론 군데군데 섞여있지만) , 결코 화해할 수 없어 보였던 두 세력이 사람이라는 이름 앞에서 악수를 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인지 영화사측은 "또, 조폭영화냐"라는 세간의 시선에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제목으로 쓸까말까 고민했던 '바른 생활'을 보여주는 '착한'영화라는 것이다.

'달마야 놀자'의 전략은 철저한 대비다. 사바와 산사, 욕설과 명상, 폭력과 평화 등등. 경찰의 단속을 피해 산으로 들어가 사찰을 접수하려는 재규(박신양) 일당과 불의불시에 들이닥친 무뢰배들로부터 절을 수호하려는 스님들이 대치하고, 그 벌어진 틈을 주지스님(김인문) 이 지혜로운 언행으로 메꿔준다.

가장 코믹한 장면은 스님들과 형님들이 벌이는 5판 3승제 격돌. "절에서 더 머물러야 겠다" "이곳에서 당장 떠나라"를 놓고 조폭들과 수도승들은 3천배.족구.고스톱.잠수.369게임을 벌인다. 3년째 묵언수행을 하던 명천 스님(유승수) 이 369게임 중 "너, 4백에서 박수쳤어"를 내뱉는 순간에선 절로 웃음보가 터진다.

여기에 주지스님의 선문답 같은 질문이 중간중간 삽입되면서 영화가 천박한 분위기로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

캐릭터들의 색깔도 살아있는 편. 출연 배우 10여명 모두 톡톡 튀는 성격들이나 별 충돌없이 작품 속에 녹아든다. 코미디 영화에 첫 출연한 박신양의 카리스마가 여전히 살아있고, 건달들을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상좌승역의 정진영도 든든하다.

특히 '킬러들의 수다'에서 신현준.신하균 등 스타군단을 무색하게 했던 정진영은 이번에도 감정.액션 등을 매끈하게 소화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반면 남성들이 주름잡는 영화인 때문인지 여성 표현은 매우 미숙하다. 마음씨 곱고 얼굴 예쁜 연화스님(임현경) 이 나오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냥 장식품□ 또 임기응변식의 찰나성 웃음, TV 코미디식의 썰렁한 유머에 에너지를 쏟아 삶의 깊숙한 곳을 콕콕 찌르는 골계미는 찾을 수 없다.

'아나키스트'를 조감독한 박철관 감독의 데뷔작. 12세 관람가. 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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