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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 틈바구니에도|낭만의 꽃은 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본사의 장홍근 특파원은「퀴논」의 맹호부대 최전방을 찾아 그곳 병사들과 좌담회를 가졌다. 일선병사가 생각나고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김영=더위와 VC(베트콩)하고 싸우느라니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들군. 자 그동안 지낸 얘기나 해볼까.
▲이=싸우러왔으니까 우선 싸우던 얘기부터 하지.
▲박=하도 여러번 전투를 해서 날짜는 기억이 안 나는데 하여간「빈탄린」부락의 VC 요새를 공격하기 위해 하오5시에 출동, 10시에 목표지에 도착, 이튿날 상오6시에 공격 개시라는 작전명령이 하달됐어. 그래서 사탕수수밭에 잠복하여 날이 새기를 기다리는데 총을 든 VC5명이 지나가지 않겠어. 방아쇠를 당기고싶은데 소대장이 못 쏘게 하더군. 그냥 지나가게 버려 두었는데 어떻게 약이 오르는지.
▲김영=그때 나는 논두렁에 엎드려있었는데 공격개시 10분전에 둑 너머에서 머리가 쑥 나오는데 보니 여자가 쌀을 메고 지나가려 하더군. 이제 VC에 발견되는 것 같아서 여자 발을 낚아채어 쓰러뜨려 놓고 입을 꼭 막았지.
▲전=그래서?
▲김영=뭐 여자를 덮치면서 입을 틀어 막았다니깐.
▲김광=아니 총각이 그것 무슨 짓이야?(웃음)
▲박=공격개시와 동시에 5분쯤 전진했을까? 적탄이 정말 억수같이 쏟아지더군.
▲김영=VC들의 진지구축이 4중5중으로 되어있었어. 거기에다 선인장·죽장·대나무숲·동굴 철저한 요새지 뭐야.
▲박=살그머니 머리를 내놓고 적정을보니 세놈이 대나무 숲으로 숨지 않겠어. 놓칠 세라고 내리갈겼더니 세 놈 다 쓰러지던데.
▲김광=무어니 무어니해도 밀림지대에서 비를 맞으며 VC를 추격할 때가 제일 힘들어. 온몸이 진흙탕이 돼서 말야.
▲전=정말 모기가 많아. 소리 없이 날아와서 물고 가는데 사람 죽겠더군.
▲이=「꽁가이」(여자)얘기나 해볼까? 이곳에 도착 후 다섯 달만에 외출을 나갔는데 월남아가씨와 재미있게 좀 지내려고 하는데 말이 통해야지. 할 수 없이「퀴논」시내를 배회하다 맥주 집을 찾아 한잔하면서 그곳 아가씨와 손짓발짓에 서투른 영어까지 섞어가면서 아무리 얘기를 해도 영 불통이야. 벙어리 냉가슴 앓기야.
▲김광=말이 안 통하니 서로 미소만 짓는 거지. 전투가 끝나 여가가 있으면「꽁가이」생각은 나는데....
▲전=월남 아가씨는 확실히 약간 매력적이야.
▲이=외출이란 좋은 거야. 아가씨 두 명을 내가 알게되었는데 한「꽁가이」와 얘기하던 다른「꽁가이」는 옆에서 굉장히 질투를 하더군.
▲박=월남아가씨들은 건장한 한국군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아.
▲김영=집에서 승낙만 한다면 나는 이곳 아가씨와 결혼할 생각도 있어. 예쁜 아가씨들이 많아.
▲박=고국에서 오는 편지가 제일 반갑지?
▲김영=편지를 받는 것이 제일 기뻐.
옛 애인으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작전 때문에 못 읽고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나중에 보니 주머니에서 물에 젖어 엉망이 되어있지 뭐야. 무슨 말을 썻는지 읽을 수가 있어야지. 주소는 간신히 알아 답장을 했는데 여태까지 회답이 안 와.
▲이=편지가 쏟아져오면 더위에 답장 쓰기도 고역이야. 더위에 사람이 좀 멍해져서 글도 안나오고.
▲박=김·오징어·고추 가루를 보내 주실 분과「펜팔」을 하고싶어
▲전=그것 좋은 생각이다.(웃음)
▲김광=김치 맛은 좀 보지만, C「레이션」만 먹어서 그런지 구수한 된장국이 제일 생각나.
▲이=우리 음식 한번 푸짐하게 먹어 보았으면 원이 없겠어.
▲전=얼큰한 막걸리에 고추장 찌개를 생각하면 아이휴―.
▲김영=저 친구는 먹는 얘기만 나오면 미친 다니깐.(웃음)
▲이=자, 얘기해 보았자 끝이 안 날 것 같으니 내일을 위해서 잠이나 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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