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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 개척정신은 이 시대의 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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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소설가 최인호씨(좌)와 김재철 한국무역협회 회장이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앞에 설치된 장보고 기념물 앞에서 장보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 회장과 최 작가는 “1200년 전에 동북아시아에 눈을 돌릴 줄 알았던 장보고야말로 지구촌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진정한 사표”라고 입을 모았다. 김형수 기자

국제적인 안목으로 장보고(?~846)를 처음으로 평가한 이는 미국의 동양사학자이자 외교관이었던 에드윈 라이샤워(1910~1990)였다. 1955년에 펴낸 '엔닌의 당대(唐代)중국여행(Ennin's Travels In Tang China)'이란 연구서에서 장보고를 '해양상업제국의 무역왕'이라고 극찬한 것이다. 장보고의 활약상을 그린 KBS2 수목 드라마 '해신'의 인기몰이(시청률 약 30%)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시대를 앞서 산 그가 세계화 시대 현대인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미덕을 온전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라이샤워가 알아 본 장보고를 우리의 영웅으로 살려낸 김재철(동원그룹 회장.70)한국무역협회 회장 겸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이사장과 드라마의 원작 소설 '해신'(전3권.열림원)의 작가 최인호(61)씨가 지난 24일 만나 장보고라는 인물이 현대에 갖는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해신'은 2001년 8월부터 1년동안 중앙일보에 연재된 뒤 2002년말 책으로 출판됐다.

▶최인호=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장보고가 부활해 살아 숨쉬는 것 같아 기분이 참 좋습니다.

▶김재철=장보고는 해상활동으로 대외진출을 이룬, 우리 역사상 최초의 세계인입니다. 오늘날 세계화라는 거센 파도에 맞서고 있는 한국인에게 그만한 사표가 없지요.

▶최=드라마 '해신'을 준비하면서 KBS 강일수 PD를 10여 차례 만나 "역사적 사실에 너무 충실하지 말라"고 주문했습니다. 우리도 '벤허'나 '글래디에이터'같은 드라마틱한 작품으로 진짜 영웅 한번 만들어보자는 뜻이었어요. 장보고는 1200년 전에 용병으로 중국 당나라에 진출했던 진취적인 인물이잖아요.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역사적인 틀에 집어넣지 않고 풀어간 덕에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것 같습니다.

▶김=원양어선을 타고 다니던 30대때부터 우리 민족의 살 길은 바다로 나가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다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해상 영웅 이순신 장군과 장보고 대사로 이어지더군요. 1998년에 학계와 해양산업계의 인사 100여 명으로 구성된 '해상왕 장보고 재조명.추진위원회'위원장을 맡으면서 장보고와 본격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최=일본 교과서만 고쳐야 되는 게 아니라 우리 교과서도 고쳐야 해요. 장보고를 왕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도모한 인물로 그려놓았으니 말이에요.

▶김=역사란 게 원래 정권을 잡은 쪽의 해석이잖아요. 그러다보니 장보고를 왜곡한 부분이 많아요. 김부식의 '삼국사기'중 '본기'에는 장보고가 역심을 품어서 죽은 것으로 돼 있지만 '김유신열전'에는 훌륭한 사람이란 표현도 나옵니다. 이름만 해도 그렇죠.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서에는 장보고가 아니라 활을 잘 쏘았다고 그냥 궁복(弓福)이나 궁파(弓巴)로 기록돼 있어요. 미천한 신분을 은연중 나타내면서 그의 활약에 대한 평가에는 인색했죠. 중국.일본 문헌에는 어디나 장보고입니다. 중국에서는 보호할 보(保)에 언덕 고(皐)를 쓰고, 일본에서는 보배 보(寶)에 높을 고(高)를 씁니다. 거기엔 선박의 안전을 지켜주고, 거래한 사람들을 다 부자로 만들어줬다는 뜻이 담겨 있지요.

▶최=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도 포세이돈 같은 바다의 신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소설 제목을 '해신'으로 했어요. 실제로 장보고는 일본에서는 신으로 추앙받고 있어요. 그리고 중국 산둥반도의 영성시에서는 다음달 28일 연건평 1000평인 '장보고전기관'이 완공됩니다. 거기엔 15m짜리 장보고 동상이 서 있어요.

▶김=장보고는 당나라 장군이 될 정도의 무예와 해적을 소탕할 힘을 갖췄어요. 또 당나라에 거주하는 신라인들을 조직화해 한인촌이랄 수 있는 신라방으로 엮는 리더십이 있었고, 국제무역에 뛰어들어 돈을 버는 상재도 뛰어났고요. 이 세 가지 요소를 두루 겸비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장보고의 개척정신과 창의력을 요즘 젊은 사람들은 배워야 합니다.

▶최=장보고는 1200년 전에 이미 한류를 인식한 사람입니다. 한.중.일 동북아를 하나로 묶어 활동했지요. 9세기경 일본의 승려 엔닌이 중국을 여행하고 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를 보면, 장보고를 '전설적인 모험가이자 무역왕'이라고 묘사하고 있어요. 장보고는 해도도 없고 나침판도 없던 시대에 동북아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한 '글로벌CEO'였습니다. 1200년 전에 우리나라를 세계 물류의 중심지로 만든 조상이 있었다는 게 자랑스럽지 않아요?

▶김=한.중.일 삼국의 경제협력 체제를 구축했던 장보고의 꿈을 오늘날 동북아 경제중심국으로 재현해야 합니다. 부산항.광양항.인천공항 등을 제2의 청해진으로 만들어 인력.기술.자본.상품이 자유롭게 오가는 동북아 경제 허브로 만들어야지요. 장보고 이후에 실종됐던 해양지향적 발전 전략을 국가경영의 중심 전략으로 삼아야겠습니다.

▶최=장보고의 세계인적, 미래인적 안목도 배워야지요. 그는 단순히 도자기를 팔아넘기는 상인이 아니라 아예 그 기술을 우리나라에 들여올 줄 아는 예술인이기도 했습니다. 고려청자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도 장보고가 당시 중국 월주 도자기의 기술을 강진으로 들여온 덕분이지요. 장보고는 종교 개혁가이기도 했어요. 당시 불교가 귀족 중심의 호국 불교였는데, '일체 만물에 불성이 있다'는 평등사상의 선종을 그가 들여 왔거든요.

▶김=1200년 전 20대 초반의 장보고라는 젊은이가 당나라에 건너가 보여준 개척정신과 모험심으로 무장한 인재들이 우리나라의 발전을 이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정리=정명진.이지영 기자 <myungjin@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 역사 속의 장보고

▶ (연도 미상)=어부의 아들로 태어남. 신라에서는 미천한 신분 때문에 장군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동네 친구 6명과 당나라로 건너감.

▶ 820년=당나라 황제로부터 군관 벼슬을 받음. 신라 사람들이 해적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린다는 것을 알고는 해적을 소탕할 목적으로 신라로 돌아옴.

▶ 828년=청해진 대사로 임명됨. 해적을 소탕한 뒤 당나라.일본과 무역 시작.

▶ 837년=왕위쟁탈전에서 패배한 뒤 찾아온 김우징을 옛 은혜를 생각해 돌봐 줌.

▶ 838년=군사 5000명을 줘 왕이 되려는 김우징을 도움. 김우징이 왕위에 오르자 감의군사로 임명됨. 김우징이 죽고 그의 아들이 왕위에 오름. 딸을 왕비로 맞아들이겠다는 약속이 대신들의 반대로 실현되지 않자 불만을 품음.

▶ 846년=조정 대신들의 사주를 받은 옛부하 염장에 의해 살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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