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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우에 붙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어제 저녁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전국의 목마른 대지를 흥건하게 적셔주고. 있다. 곡창 호남에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니 ,더욱 흐뭇하다. 봄비는 봄의 흥취를 더하는 것. 4월을 가장 잔인한 달로 짚은 것은 이방각인의 부질없는 넋두리. 단비를 함께 가져오는 한국의 4월은, 역시 아름답고 알찬 계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호사엔 다마라고할까. 지난 공일날 수십만의 시민들을 고궁으로, 야산으로 뛰쳐나가게 하고 8백 여 건 가까운 보안사범과 3백 명이 넘는 미아를 한꺼번에 빚어낸 상춘소동을 두고 한 머리에선 민생의 안정을 구가하고, 또 다른 편에선 민생의 각박함을 개탄했다. 진실은 양극의 중간에, 또는 양극이 상통하는 곳에 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솟게 하고 초목의 뿌리를 동면으로부터 깨어나게 하는 봄비 내리는 4월은 소생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우울과 죽음을 가져오는 가장 잔인한 달 일수도 있다 .4월과 봄비에서 소생과 약동보다는 차라리 우울과 죽음을 보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어주고 우리를 따스하게 감싸주는 겨울」이 더 그리울 수도 있다.
4월이 가져오는 우울과 불안은 벌써 여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만리타향에서 가난과 병고를 치르다 못해 18층에서 투신자살한 묘령의 음악도가 있었고, 일류교에 들어가지 못한 설움을 참다못해 설악산 중의 폭포를 찾아서 함께 저승길로 떠난 두 여대생이 있었다. 가난과 일류병이 유죄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오랜만에 안정의 외형을 갖춘 이번 4월이 과연 무죄일까. 생을 재촉하는 4월의 기운에 압도되어 도리어 스스로 죽음의 필을 찾는 병든 마음이 슬프지 않은가.
지금 내리고 있는 봄비는 만화방창의 계절을 맞아, 아니 놀고 못 배겨하는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는 진정제의 구실을 해야한다. 창 밖과 「페이브먼트」에 내리는 빗방울을 보고 소리 없이 적셔지는 머리와 어깨로, 보다 밝은 봄을 감축하면서 마음속의 어둠을 걷어 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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