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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켜라 칼바람, 달려라 브라우니 친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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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의 설산에 아침노을이 물들었다.

로키산맥은 길이 4800㎞의 장대한 설산(雪山)이다. 캐나다와 미국 국경선에 걸쳐 남북으로 뻗어 있다. 이 중에서 캐나다 영토에 속한 1600㎞여의 산맥이 ‘캐나다 로키(Canadian Rocky)’로 불린다. 유네스코 세계 10대 절경으로 뽑힌 바 있는 빙하호 레이크 루이즈(Lake Louise)는 ‘캐나다 로키의 보석’ 밴프국립공원(Banff National Park)에 있다. 해마다 관광객 400만~500만 명이 레이크 루이즈를 보기 위해 국립공원을 찾는다고 한다.

12월의 한복판에 들어선 레이크 루이즈는 천연 아이스링크가 돼 있었다. 스케이트로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 한가로이 호숫가를 산책하는 연인들, 노르딕스키와 설피를 신고 눈밭을 가로지르는 탐험가들…. 이 모두가 위대한 로키의 자연과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을 연출했다. 피로한 육신과 상처받은 영혼까지 새하얀 설원에 녹아들었다. 로키에는 힐링이 있었다.

글·사진=변선구 기자

호수 따라 눈꽃 트레킹 코스 50개

밴프국립공원 심장부에 자리한 레이크 루이즈 일대는 캐나다 로키 최고의 트레킹 명소다. 트레킹 코스만 50개가 넘는다. 레이크 루이즈를 둘러보는 가장 좋은 방법도 역시 걷는 것이었다.

 지난해 12월 14일 이른 아침 ‘밴프 타운(Banff Town)’을 나섰다. 밴프 타운은 밴프국립공원을 찾는 이들의 베이스캠프 격인 작은 마을이다. 로키산맥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리틀 비하이브(Little Beehive)’ 전망대로 발길을 향했다. 전망대를 받쳐 든 절벽 모양이 벌집(Beehive)을 꼭 닮아 지어진 이름이다. 여름이었다면 우거진 숲 사이로 흙길을 밟았겠지만 눈 내린 겨울 산행은 또 다른 묘미를 안겨줬다.

 뽀드득뽀드득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설산으로 들어섰다. 숲은 말 그대로 ‘밀림’이었다. 수령이 200~300년 된 전나무와 소나무가 사방을 메울 기세로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숲의 정령이 나타나 말을 걸어올 듯했다.

 한겨울 찬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내쉬기를 반복하노라니 엎어놓은 시루처럼 생긴 산봉우리가 나타났다. 그 발치에 작은 설원이 둥그렇게 펼쳐져 있었다. 가이드가 이곳도 호수라고 귀띔했다. ‘레이크 미러(Lake Mirror)’다. 로키의 아름다운 풍광을 거울(Mirror)처럼 담아냈을 여름의 호수 정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레이크 루이즈에서 2.6㎞ 올라왔다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가파른 비탈길을 1㎞쯤 오르자 또 호수가 나왔다. 트레킹 코스의 쉼터가 되는 ‘레이크 아그네스(Lake Agnes)’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에 새하얀 융단이 깔려 있었다. 오던 길을 뒤돌아보니 레이크 루이즈에 병풍마냥 둘러쳐진 빅토리아 빙하 산이 비경을 빚어냈다. 리틀 비하이브 전망대까지는 1.4㎞가 남아 있었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하산해야 한다는 가이드의 충고에 따라 발걸음을 돌렸다. 청정한 로키의 기운이 스민 것일까. 한결 몸이 가벼웠다.

알래스칸 허스키 일곱 마리가 끄는 썰매에 앉아 눈 덮힌 설원을 질주한다.

사랑 키워주는 설원의 개썰매

레이크 루이즈를 굽어보는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즈 호텔’에서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로 한기를 녹였다. 옛날 영국의 왕족도 이곳에서 홍차를 마시며 호반의 정취를 즐겼다고 한다. 야생 딸기, 파인애플, 수박을 섞은 과일 칵테일과 작은 샌드위치, 케이크를 음미하며 이른 오후의 여유를 만끽했다.

 로키의 겨울은 지루할 틈이 없다. 겨울철 밴프국립공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개썰매 체험장이 레이크 루이즈 바로 아래 있었다. “컹컹컹!” 사납게 짖어대던 개들이 머리를 만져주자 이내 순한 양이 됐다. 썰매를 끄는 알래스칸 허스키는 시베리안 허스키와 그레이하운드의 교배종이다. 시베리안 허스키보다 털이 짧고 체격도 빈약해 보이지만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700㎞를 달리는 지구력을 지녔다.

 보통 2인용 썰매는 허스키 예닐곱 마리가 끈다. 전문 안내자가 앞장서 썰매 행렬을 이끈다. 앨버타주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경계를 도는 코스를 택했다. 안내자의 신호에 맞춰 개들이 뛰기 시작했다. 썰매가 미끄러지듯이 속도를 냈다. 로키의 찬 공기가 귀와 볼을 사정없이 할퀴고 지나갔다. 새파란 하늘과 눈 쌓인 전나무 숲 풍경에 눈이 시렸다. 서먹한 관계의 연인이 개썰매를 타면 좋을 것 같다. 영하 20도를 밑도는 추운 날 앞뒤로 앉아 썰매를 타면 체온 유지를 위해서라도 껴안듯이 몸을 밀착하는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1 관광객이 개와 함께 스노 슈잉을 하는 모습. 2 관광객이 레이크 루이즈를 출발해 리틀 비하이브 전망대로 오르고 있다. 3 인디언 말로 ‘영혼’의 호수란 의미의 레이크 ‘미네완카’. 밴프국립공원에서 가장 큰 호수다.

 
로키의 아침은 세가지 빛깔

‘애프터눈 티’를 주문하면 나오는 과일 칵테일.

로키의 하루는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 이튿날, 부지런한 여행자를 위해 로키는 아름다운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히말라야를 연상시키는 설산이 아침 햇살로 물들어 감동을 자아냈다. 새하얀 봉우리가 분홍빛이 됐다가 황금빛으로 바뀌었다.

 아침 일찍 밴프국립공원을 돌아보면 사슴 등 야생동물도 만날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이 어울려 살지만 우선순위는 동물이라고 가이드가 말했다. 동물에게 먹이를 주거나 만지는 등 스트레스를 주면 벌금을 물 수도 있다고 한다.

야생 사슴을 만지는 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다.

 밴프 타운과 로키 전경을 쉽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곤돌라를 타고 설퍼산(2285m) 꼭대기로 오르는 것이다. 창이 넓은 4인승 곤돌라는 8분 만에 정상에 다다랐다. 발 아래 펼쳐진 침엽수림이 장관이었다. 전망대에 서니, 숲에 잠긴 ‘페어몬트 밴프 스프링스호텔’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은 지 100년도 더 된 호텔은 고대의 성을 연상시켰다. 그 옆으로 ‘보 강(Bow River)’과 ‘보 폭포(Bow Falls)’가 보였다. 보 폭포는 메릴린 먼로가 주연한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바로 위엔 ‘영혼의 호수’라 불리는 ‘레이크 미네완카(Lake Minnewanka)’가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다.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로키의 아침 풍광에 가슴속까지 시원해졌다.

4 레이크 루이즈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모습. 5 유황온천 ‘밴프 어퍼 온천’. 6 100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페어몬트 밴프 스프링스 호텔.

 

설퍼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온천이 있다. ‘설퍼(Sulfur·유황)’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유황온천이다. 설퍼산 ‘밴프 어퍼 온천(Banff Upper Hot Springs)’은 1884년 철도 건설 당시 중국인 노동자 3명이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지면서 발견됐다. 평균 수온 35~40도의 노천 온천에서 수영복을 입은 채 몸을 담갔다. 로키의 서늘한 설경을 바라보며 온천욕을 하노라니 한겨울 행랑객의 여독도 저만치 사라져갔다.

●여행정보=캐나다 밴프국립공원은 앨버타주 캘거리에서 자동차로 1시간30분쯤 걸린다. 인천에서 비행기로 일본 나리타를 거쳐 캘거리로 입국하거나, 인천에서 캐나다 밴쿠버를 거쳐 국내선을 타고 캘거리로 가야 한다. 밴쿠버보다 캘거리로 입국하는 방법이 입국심사가 까다롭지 않아 편하다. 겨우내 캐나다 로키에서는 눈꽃 트레킹·스키·스케이트·스노슈잉·개썰매 등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등산을 하려면 아이젠·스패치 등을 챙겨야 한다. 겨울은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날도 많아 방한복은 필수다. 얇은 옷을 여러 벌 준비하는 게 좋다. 하나투어(02-2127-1202), 모두투어(02-728-8616) 등이 로키 여행상품을 판매한다. 주한 캐나다관광청 www.canada.travel, 02-733-7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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