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학관 전성시대, 그런데 무엇으로 채울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박완서

“지역에 문학관을 지으려 하는 데 국내에 가장 큰 문학관이 어디죠.”(지방자치단체 관계자)

 “글쎄요. 관련 작가의 자료는 얼마나 확보하셨나요.”(한국문학관협회 직원)

 “설계가 급하지, 자료는 나중에 모으면 되죠.”(지자체 관계자)

 “그렇진 않지만, 그런데 제발 산 속에 짓지는 마세요.”(협회 직원)

 한국문학관협회(회장 김후란)에 종종 걸려오는 전화 내용이다. 이강석 협회사무국장은 “문의 내용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라고 전했다. 문학관 건립이 내실보다 크기로 결정되는 단면을 보여준다.

 ◆작가를 잡아라=숫자만으로 보면 가히 문학관 전성시대다. 한국문학관협회가 만들어진 2004년 전국의 문학관은 14개에 불과했다. 이후 지자체가 문학관 건립에 열을 올리며 그 숫자가 크게 늘었다.

2012년 말 현재 협회에 등록된 문학관만 60곳. 회원이 아닌 곳까지 포함하면 70곳이 넘는다. 현재 건립 중인 것도 15개 남짓. 문화적 개성을 확보하려는 지자체의 노력 중 하나다.

 문학관이 붐을 이루며 이른바 유명 작가에 대한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는 시인 고은(80)의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6월 예산 7억여 원을 들여 광교산 자락의 주택을 집필실과 사택으로 리모델링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수원시는 현재 경기 안성에 살고 있는 고씨가 이주를 확정할 경우 문학관 건립도 검토하고 있다.

 최근 호화 논란이 일었던 강원도 화천군 감성마을은 작가 이외수(67)씨를 영입하기 위해 2004년부터 조성됐다. 생존작가 문학관은 이례적이다. 화천군은 춘천에 거주하던 이씨에게 문학관과 집필실 등을 제공했다. 총 75억원이 들어갔다.

 일부 작가나 유족이 문학관을 선호하기도 한다. 시인 기형도(1960~89)의 유족은 경기도 광명시에 조성되는 기형도문화공원 내에 복합문화공간 성격의 문학관을 지어달라며 현재 광명시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왜 문학관인가=문학관은 지자체와 작가 모두에게 일정 부분 도움이 된다. 작가나 유족의 입장에서는 유·무형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 지자체는 유명작가를 영입해 지역 이미지를 높이는 동시에 관광수입 등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예컨대 화천 감성마을의 경우 이외수씨가 옮겨온 뒤 관광객이 크게 늘어났다. 화천군에 따르면 이씨가 이주한 첫 해인 2006년 2000여 명에 불과했던 관광객이 지난해에는 2만5000명으로 늘었다. 화천군은 문학관 입장 유료화도 고려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지원도 있다. 2002년부터 해당 지자체가 문학관 건립 지원을 신청할 경우 ‘광역지역발전특별회계’를 통해 건립비의 40%까지 국고가 지원된다. 낙후된 지역문화의 활성화 명목이다.

 ◆문제는 소프트웨어=기대에 비해 아직 효과는 뚜렷하지 않다. 강원도 춘천의 김유정문학촌, 원주의 토지문학관 등 탄탄한 프로그램과 운영을 통해 지역문화 구심점이 된 경우도 있으나 상당수 문학관이 단체장 공약 이행 차원 등으로 진행되곤 한다. 색깔이 뚜렷한 ‘문화상품’으로서의 기능은 약한 편이다. 숱한 문학관이 있음에도 외국에 견줄 만한 콘텐트를 갖춘 곳이 거의 없다.

 이강석 사무국장은 “소유권은 지자체가 가지고 있더라도 문학관 운영은 전문가 등에게 맡겨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2001년 전북 고창 미당시문학관 개관 참여했던 동국대 윤재웅 교수는 “소장 자료를 꾸준히 관리하고, 또 이를 번듯한 콘텐트로 끌어올리는 기획력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면에서 경기도 구리시에 건립되는 ‘박완서 자료관’은 시사적이다. 구리시는 소설가 박완서(1931~2011)가 세상을 떠난 뒤 고인이 살았던 아치울 마을을 ‘박완서 문학마을’로 조성하려 했으나 기념관 건립에 반대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생전에 지역 도서관에 조성했던 자료실 규모를 2015년까지 크게 넓히기로 했다. ‘박완서 자료관’ 설계자문을 맡은 건축가 김원씨는 “새 건물을 짓기보다 작가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더 의미 있다”고 말했다.

 김유정문학촌장을 맡고 있는 소설가 전상국씨는 “지자체가 한국문학을 알리는 데 적극적인 것은 좋은 일이지만 전시효과에 치우칠 경우 되레 해당 문인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