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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사상 첫 부녀 금메달 해낸다"

중앙일보

입력

딸에겐 언제나 아버지가 '신화'였고 차마 넘보기 힘든 벽이었다. 아버지가 경기장을 찾을 때마다 딸은 자신의 등 뒤로 느껴지는 아버지의 걱정스러운 눈길이 부담이었고, 징크스처럼 우승컵을 안지 못했다. 머나먼 독일에서 무언의 응원을 보낼 아버지를 떠올리며 딸은 힘차게 '금빛 발차기'를 했다.

태권도 국가대표 김연지(20ㆍ한체대2)가 최초의 '부녀 챔피언'을 향해 순조롭게 출발했다. 1일 제주도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첫날 여자 라이트급에 출전한 김선수는 1회전에서 태국의 베아시리쿤을 11-1로 대파, 상큼한 스타트를 끊었다.

김선수의 아버지 김철환(48)씨는 1973년 제1회 세계선수권대회 웰터급에서 우승하는 등 70년대 돌려차기의 1인자로 명성을 날렸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 80년 독일로 건너가 도장을 운영하며 유럽에 태권도를 전파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독일에서 태어난 김선수는 여섯살 때부터 아버지의 도장을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태권도를 배웠다. 김사범이 공인 8단, 어머니 양종숙(42)씨가 1단, 큰딸 경수(23)씨와 김선수가 3단, 막내 소라(18)가 1단 등 도합 16단의 태권도 가족이다.

그중에서도 김선수가 태권도에 가장 애착을 보였다. 16세 때 네덜란드 오픈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김선수는 태권도인으로서 삶을 시작했다.

그때 김선수는 "한국으로 가고 싶다. 거기서 제대로 태권도를 익혀 세계 1인자가 되겠다"며 폭탄선언을 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길을 이어받은 둘째딸이 대견스러웠지만 딸에겐 한국이 외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딸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짐을 싸 한국땅을 밟았다.

서울체고에 진학, 기숙사에 머무르며 태권도를 익혔으나 기술보다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견디기 어려웠다.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 단체생활은 충격이었다. 선후배의 위계질서,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기합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태권도가 아닌 아버지의 고향 '한국'을 알아가느라 그렇게 2년을 소비했다.

99년 중·고연맹전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감을 얻었고 올 4월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마침내 태극마크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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