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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신규 지원방안 놓고 '은행 색깔' 차별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신규자금 지원방안을 확정한 것을 계기로 은행마다 색깔 차이가 두드러질 전망이다.

외국인 투자자의 영향이 큰 은행들은 큰 손실을 감수하며 하이닉스에서 손을 떼는 과감성을 보여주었다. 정부의 눈치를 살피며 갈 길을 정하던 옛 은행들의 모습이 아니다.

이로 인해 공적자금이 들어간 옛 메이저 은행들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한국이 '금융 주권'을 외국 자본에 빼앗긴 남미 제국을 닮아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공적자금 들어간 은행 대(對)외국인이 대주주인 은행=하이닉스에 돈을 댄 19개 은행이 각기 다른 이유로 제 갈길을 갔다. 일단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른 결정으로 비춰진다.

신규 자금을 대겠다는 곳은 국책기관 성격의 산업은행과 농협, 공적자금을 받은 조흥.한빛은행,수출입은행.한국은행이 대주주인 외환은행 등이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 하이닉스가 법정관리로 갈 경우 타격을 입을 우려가 있는 현대상선.종합상사.중공업 등에도 여신이 많기 때문에 추가 부실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하이닉스를 살려야 할 입장이다.

그러나 이들은 신규 지원에 불참한 은행들에 대해 '혼자 살려고 한다'며 못마땅해하고 있다. 외국인 지분율이 40%를 넘는 국민.주택.제일.신한.한미.하나 등 6개 시중은행이 모두 하이닉스를 외면했다. 이들은 대부분 외국인 주주가 반대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특히 뉴브리지캐피털이 인수한 제일은행은 지원 안건 자체에 반대했고, 외국계 은행인 HSBC는 협의회에 불참했다.

기업.서울.부산.경남.광주 등 외국인 지분이 없거나 적은 은행들도 반대하긴 했으나 서울은행을 빼고는 여신액이 몇백억원 수준이다.

◇ 우리금융지주회사 자회사의 '분란'=우리금융지주회사의 같은 식구인 한빛.평화.경남.광주 등 4개 은행은 세편으로 갈렸다.

한빛은 안건에 찬성하고 신규자금을 지원하기로 했고, 평화는 신규지원 안건에 반대했다 돈을 대는 쪽으로 기울었다. 경남.광주은행은 채권단협의회에 처음부터 불참해 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이처럼 같은 식구끼리 길이 엇갈린 것은 우리금융지주회사가 여신정책을 총괄하지 못한 탓이다.

특히 경남.광주은행은 여전히 '독자 생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번 하이닉스 처리에서 드러난 '공조 부재' 현상은 '조기 통합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금융당국은 먼저 한빛은행과 평화은행을 합병하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 국책은행의 산업정책 기능 빛바래=산업은행은 국제 통상문제를 의식해 직접 신규자금을 대지 못했다. 대신 업무제휴 관계를 맺은 한빛은행과 하이닉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이 산업은행 몫을 절반씩 떠안았다.

산업은행의 신규자금 지원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외국 정부와 업체가 세계무역기구(WTO)에 의해 지원할 수 없는 보조금으로 규정해 시비를 걸 가능성이 크다. 이번 기회에 '민간 투자은행'으로 전환하거나 정책기능을 떼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허귀식 기자 ksl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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