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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북평의 대외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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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편집자주】모택동의 중공 통치 17년, 그동안 모는 지칠줄 모르는 투혼으로 줄곧 세계기상도에 멱칠을 해왔다. 그러나 그의 마력도 연속적인 외교 정책의 실패와 그에 따른 내부갈등으로 이제는 한풀 꺾인 느낌이다. 누구도 모의 운명이 「수카르트」의 그것이 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한편 완만하긴 하지만 이미 움직일 수 없는 미·소의 해빙「무드」는 세계 관심을 보다 중공쪽으로 옮겨 놓고 있다. 얼마전 미 상·하원 외교 위원회의 중공 문제 청문회나 대중공 문호 개방을 위한 미국내의 압력 등은 이와 같은 중공 관심도를 말해 주는 것이다. 한국은 지정학적 견지에서, 대륙의 영향을 경시할 수 없으므로, 여기 외교·군사·경제 등 중공의 내부를 이모저모 해부하여 그 동안의 중공 실정과 앞으로의 만회 가능성을 타진해 본다.

<「러스크」발표로 결론 내린 미 정책>
「딘·러스크」미 국무 장관은 지난 16일 10개 항목에 달하는 대 중공 정책을 발표하고 「신축성 있는」대 중공 정책을 새삼 강조했다. 이보다 앞서 미 상원 외교 위원회는 중공 문제에 관한 광범위한 토론회를 열고 전문가들의 다각적인 의견을 청취한 바 있다. 「러스크」장관의 16일 정책 발표는 그간의 미국 내 여론과 변화될 수 있는 미국의 대중공 정책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이며 이로써 일단 미국의 정책은 결론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의 정책 발표에서 새로운 전기가 될 만한 것은 찾아볼 수 없지만 앞으로의 미·중공간의 국교 문제는 오로지 중공의 태도 여하에 따라 결정될 수 있음을 명백히 하고있다.
중공 외교는 지난 1년 동안 연속적인 패배 끝에 상처뿐인 몸이 되었다.
일종의 유행병처럼 번진 「아프리카」내의 반중공「쿠데타」, 「인도네시아」공당의 몰락, 「쿠바」의 배신, 북한과 월맹의 미묘한 태도 등 사면초가에 싸인 중공은 설상가상으로 모택동의 중병설마자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중공 외교가 겪었던 국제 정치상의 역조와 모의중병은 앞으로 중공의 외교 노선에 어떤 변모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가정은 충분히 선다.

<대불 국교 수립은 중공 외교의 도약>
중공 외교의 도약대가 된 것은 64년1월 불란서와의 국교 수립이었다. 이 보다 조금 앞서 주은래는 50여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아프리카」와 동구 등에 휘소 행각을 벌였다. 마침내 중공은 「아프라카」불어 사용국 대다수와 외교 관계릍 맺기에 성공하여 다음해 65년11월 「유엔」총회의 중공지지표를 「47대47」이란 기록적인 「타이·스코어」로 이끌게 했다. 여기서 자신을 얻은 중공 외교가 미·소, 그리고 세계에 성급히 도전 한해가 65년이다.
연초 중국 전국 인민 대표자 대회 제1회 회의는 『당면한 국제 정세는 동풍이 서풍을 압도하고 있다』고 호언하며 61년6월 유소기가 발표한 3개의 외교 강령과 5개 평화 원칙을 재확인, 1965년을 「해방의 해」로 결정했다.
처음 중공 외교 공세의 저변을 이루었던 세 가지 궁극적인 목표는 ⓛ동남아에서 미군 세력을 구축한다 ②국제 공산 주의운동의 주도권을 소련에서 뺏는다 ③아·아 세계의 종주국으로서 중공의 승인이다.

<미군 월남 주둔에 봉쇄 당한 침략로>
그러나 월남전이 대규모 전쟁으로 확대된지 만1년, 중공은 그가 무엇보다 꺼렸던 「중공국경선 부근에 미 군사력의 고착임」를 허용하고 말았다.
월남 내 미군 사력과 영구화는 「라오스」·태국·「캄보디아」등의 공산주의 세력을 거의 동결시켰고, 작년 9월30일 「인도네시아」의 불발 「쿠데타」는3백만 인니 공산당을 몰락으로 이끌었다. 「인도네시아」의 공산권 탈락은 세계 제5대국이라는 맹방「인도네시아」 의 상실뿐만 아니라 「말레이지아」「싱가포르」「필리핀」에 대한 중공의 침투로가 사실상 봉쇄 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옹크루머」실각 등 아주 서도 배척「붐」>
한편 「아프리타」와 라틴·아메리칸 동구 제국의 중공 배척「붐」도 또한 요란했다. 「브라자빌·콩고」·「다오메」·중앙「아프리카」공화국·「오트볼타」·「나이지리아」등의 연속적인 군 부정정섭은 간격같이 반중공 시책을 내세웠다. 계속해서중공 방문중에 다한 「가나」의 「용크루머」대통령의 실각과 「카스트로」의 배신은 실패라는 이름으로 「중공외교극」을 종장으로 이끌었다.
어쩔 수 없이 절망의 한계점에 다다른 중고외교가 최후의 일격을 받은 것이 지난달 29일 열린 제23차 소련 공산당대회. 지금가지 중·소 관계에서 중립을 지키던 월맹과 북한이 참가한 이 대회벽두, 「브레즈네프」는 예상을 뒤엎고 부드러운 화조로 「소·중· 알바니아」의 평화 회담을 제의하여 만중의 갈채를 받았다. 만신창이가 된 중공에 화평을 청한 「브」의 수작은 마치 「중환자에게 안락사를 청한 것」.

<흐려진 모 신통력 지도층에 내분도>
중공이 현 외교 정책의 실패를 싸고 내부분열을 일으키고 있으리라는 것은 여러 중공 문 제 전문가들에 의해서 증명되고 있다. 간단한 예로, 중공의 외교 정책은 일절의 타협이나 차선을 인정치 않는 외교 노선을 단지 모택동식 혁명 이론을 충실히 따라온 것뿐이었다.
그러나 세계는 저들의 생각과는 달랐다. 근래의 무참한 외교적 실패는 불가사리 같던 모택동의 정치적 신통력을 크게 흐려놓고 말았다.
절대적인 독재자가 그의 「카리스마」적 후광을 잃을 때 반드시 그 이면에 정권 다툼을 위한 암투가 벌어지케 마련이다. 현 중공 지도층 내부의 갈등은 수건파대 강경파의 싸움이다.
주은래 수상과 진의 외상을 중심으로 이부춘(국가 계획위원주임), 진운(당 지도부 부주석) 등의 온건파는 외교뿐만 아니라 내정에 있어서도 좀더 융통성 있는 정책을 원하는 현실파이다. 이에 맞서고 있는 강경파는 당서기 등소평을 두목으로 하는 모택동 사상에 보다 투철한 이론파들이다.
한편 주은래와 진의는 당 회의에서 오히려 자신들이 반대했던 외교정책의 실패로 강경파의 비난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단지 그물이 행정 담당자라는 것 때문에…. 주는 이에 반발, 등소평과 모의 유력한 후계자인 팽진(북평 시장), 그리고 나서향(군 참모 총장)등이 「인도네시아」사태에 깊이 개입한 사실을 들추어 이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양파의 대립은 군과 당의 알력, 당내 연령 지방 색 따위에서 오는 이질적 요소의 갈등의 부분으로 모가 사라진 후 중공이 치려야할 엄청난 내분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수>

<순서>
①북평의 대외 정책 ②교조주의의 고수 ③중공의 군사력 ④미국의 대중공관 ⑤북평의 무역 정책 ⑥중공의 과학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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