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사실 왜곡 우려되는 역사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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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의무는 진실과 허위,확실과 불확실을 분명히 구별하는 것이다."

독일의 시성 괴테의 역사에 대한 통찰이다. 영국의 역사 철학자 E.H.카도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란 명구를 남겼다. 정확한 사실 고증이 역사 해석의 출발점이며, 그를 바탕으로 현재에도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가 역사라는 인식이다.

요즘 지상파 방송 3사에서 사극(史劇) 의 바람이 거세다.

KBS의 '태조 왕건'과 '명성황후',그리고 SBS의 '여인천하'.여기에 MBC의 경제 사극 '상도'까지 가세했다. 모두가 방송사의 주력 상품이다. 시청률 상위를 사극이 독식하고 있으니, 방송사간 경쟁이 어느 때보다 뜨거울 수밖에 없다.

이런 과다 경쟁 때문일까.신선한 출발을 했던 극들이 이젠 비판의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사실관계 시비에 휘말리는가 하면 지나친 현실 비꼬기라는 질타를 받고 있다.

최근 '여인천하'의 한 장면. 주인공 '난정'이 어가를 가로막으며 강경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미천한 신분으로 왕의 행차를 가로막는다는 불가능한 상황 설정을 차치하고라도, 여염집 여인이 임금을 맨 얼굴로 마주 대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 법도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명성황후'에서도 일개 후궁이 중전에게 소리를 지르고 패악을 부리는, 시대상과 맞지 않는 장면이 자주 연출됐다. 순전히 극적 긴장감을 위해 창조된 장면들이다.

또 최근 사극들에는 우리 현실에 대한 조소가 많이 담겨 있다. '태조 왕건'의 후계자 갈등이나 '여인천하'.'명성황후'의 세자 책봉 논란은 '차기 구도'를 둘러싼 정치판의 이전투구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최근 '여인천하'에서 한창인 '치부(致富) 책'소동은 '이용호 게이트'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들 현실 반영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추한다기보다 시청률을 위해, 현재를 검증되지 않은 과거에 끼워 넣는 형국이다.

게다가 과장되고 필요 이상 오래 진행됨으로써, 역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사극이란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지만 창작물의 특성상 각색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토대는 사실(史實) 이고, 각색이 지나치면 자칫 왜곡이라는 늪에 빠질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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