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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소프트웨어 전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마이크로소프트 PC 운영체제의 최신 버전 윈도XP 출시가 세계적인 환영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경쟁사들의 문제제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이 10월17일 서울을 방문했을 때 모든 사람이 빌 게이츠의 최고의 친구가 되고 싶어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빌 게이츠에게 한국은 마이크로소프트가 IT(정보기술) 부문에 제공하는 협력과 투자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게이츠는 디지털 가전제품 개발에서 삼성전자와 전략적 협력 관계 구축을 발표했다. 또 한빛은행과는 은행 고객들을 위한 금융 서비스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말 모든 사람이 게이츠를 환영했던 것은 아니다. 게이츠가 방문하는 곳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세계 지배에 몰두하는 독점기업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따라 붙었다. 그리고 매우 국수주의적 성향을 가진 한국에서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기업에 대한 반감도 상당히 높았다. 하기사 마이크로소프트의 반경쟁적인 행동은 미국 법정에 의해서도 이미 입증된 사실이 아닌가.

또 마이크로소프트의 최신판 PC 운영체제인 윈도XP의 출시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한국의 18개 인터넷 및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서로 단결해 마이크로소프트의 정책을 비난하며 법적 대응에 들어갔다.

한국 최대의 인터넷 포털 다음 커뮤니케이션스의 김윤희 대변인은 "대중에게 마이크로소프트의 부도덕한 행태를 알리고 있다"며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이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알려주려 한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한국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과의 관계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 봤을 때 예외적으로 덜그럭거렸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보기 드문 국가다. 한국은 원기왕성한 자국의 소프트웨어 업계에 한국어 응용프로그램과 인터넷 기반 서비스 등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기업들이 있다.

서울에 있는 '한소프트'는 과거 마이크로소프트가 매입하려한 적이 있는 기업이다. 한소프트는 PC 워드프로세싱 프로그램의 75%를 장악하고 있고 반면, MS 워드는 20%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인터넷 포털 다음은 한국 인스턴트 메시지 시장에서 점유율 20%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윈도 메신저는 13%의 점유율로 3위에 그쳐있다.

윈도XP의 출시로 마이크로소프트는 한국에서 더욱 커진 비난에 시달리고 있고 법적 공격까지 받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윈도XP가 소비자 선택권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한다. 윈도XP는 사용자들을 인스턴트 메시지 등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서비스로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었다(인스턴트 메시지 서비스는 온라인에 있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는 것으로 한국에서 널리 퍼져 있다).

인터넷 포털 라이코스 코리아의 김형찬 전략기획팀장은 "윈도XP는 결국 라이코스 코리아 뿐만 아니라 자유경쟁 정신으로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모든 기업들에게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IT 시장 침체는 뿌리깊은 마이크로소프트 공포를 더욱 악화시킨다. 기술 산업 붕괴로 한국 IT 기업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모든 주요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1위가 되려는 MS의 무자비한 시도로 인해 더 큰 위험에 노출돼 있다.

월간 방문객 1천3백만여 명을 보유한 한국 최대의 인터넷 포털 다음은 MS가 10월26일 윈도XP를 발표할 경우 최대의 기반을 잃을 수 있다. 이를 우려한 다음 관계자들은 윈도XP 시판을 막는 법정 명령을 요청했으며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에 MS를 제소했다.

이재웅 다음 커뮤니케이션스 CEO는 "다른 기업들은 더 나은 서비스나 가격으로 경쟁하려 하지만 MS는 운영체제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가 달리고 있을 때 MS는 스포츠카를 타고 경쟁하는 꼴이다"라고 말했다.

권찬 마이크로소프트 코리아(MS Korea) 대변인은 MS가 잘못한 일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경쟁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해 법적인 수단을 이용할 필요를 느낀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며 "우리는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해 고객 및 협력사들과 함께 일하는 데 더 집중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MS를 비난하기 전에도 MS는 유사한 사건을 수차례 겪었다. 컴퓨서브(Compuserve)와 아메리카 온라인(America Online·現 AOL 타임워너) 등 미국의 주요 인터넷 사이트들은 1995년 윈도95가 자신들과 경쟁 중인 MS의 웹사이트에 불공정한 이익을 준다며 윈도95 운영체제 시판을 막으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 이후 MS는 미국 법무부에 의해 반독점 위반으로 고발당했다. 이 대규모 법정 전쟁에서 정부 주장의 핵심은 MS가 윈도 내에 인터넷 검색 프로그램을 내장했다는 데 있었다. 이 때문에 한때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터넷 기업이었던 넷스케이프(Netscape)가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MS는 어떤 프로그램이든지 윈도에 탑재해 혁신시킬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미국 대법원은 결국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은 일본 시장만큼 크지는 않지만 싸울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AC닐슨/넷레이팅스 6월 조사에 따르면 약 2천2백만명의 한국인들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또 세계의 어떤 이용자들보다도 이용 빈도가 높다. 한국 네티즌 10명 중 9명이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한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광대역 서비스 보급률이다.

한국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아니면 이 중요성 때문에) MS는 적지않게 한국인들의 노여움을 사왔다. 1997년 MS는 파산 직전의 한소프트(당시 한글과 컴퓨터)를 매입해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장악하려 했지만 '국가의 보물' 매각에 반대하는 여론의 반발로 실패했다. 그 이후 한소프트는 한국 투자가들에게 지분을 팔았다.

MS는 또 한국 소프트웨어 설명서에 '윈도'란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놓고 오랜 재판을 벌이고 있다. 한편 한국어 인터넷 검색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넷피아는 MS가 윈도 사용자들로 하여금 MS 인터넷 익스플로러 검색 엔진에 내장된 한국어 검색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며 소송 제기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판정 넷피아 CEO는 "우리가 다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MS가 사람들이 이를 건너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같다"며 "이는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저항이 커지고 있는 것은 과거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누렸던 지배적인 위치가 외국 기업들의 한국 IT 시장 공격으로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크 피브스 MS 아시아 사업개발 총괄 책임자는 "한국은 기술선진국으로 기술 문제가 많은 사람들의 1차적 관심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인스턴트 메시지 서비스를 바탕으로 인터넷 포털 1위가 됐다. 피브스는 "따라서 이들이 메시지 시장에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을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윈도XP에는 윈도 메신저 대신 다음의 메시지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고 덧붙였다.

미국 소프트웨어 대기업과의 대결은 한국 IT 부문에 있어서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다. 컴퓨터 산업에서 사람들이 새로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다시 구입하게 만들려면 히트 상품이 있어야 한다. 과거에 윈도의 새 버전 발표는 컴퓨터 매출에 도움이 됐다. 실제로 MS가 매입을 시도했던 한소프트는 윈도XP가 한국에서 큰 반응을 보이길 바란다. 윈도XP는 인터넷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들의 구동에 더 나은 기반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중원 한소프트 전략투자부장은 "우리는 MS 인터넷 소프트웨어와 잘 맞도록 우리의 제품을 준비했다"며 "이는 우리에게 필요한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우 대한투신증권 IT 애널리스트는 "윈도XP로 한국 기업들이 피해를 볼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한국인들은 국내 인터넷 서비스와 소프트웨어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MS를 상대로 한 다음의 제소를 받아들일 것인지 밝히지 않았고, 한국 법원도 다음의 윈도XP 출시 금지 가처분 신청 심리 기일을 정하지 않았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MS의 사업에 족쇄를 채우려면 정부가 전적으로 참여하지는 않더라도 얼마간의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김대중 행정부는 MS를 적으로 돌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어려운 경제는 외국 투자가들을 필요로 하고 MS를 상대로 한 소송은 여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이를 크게 상관하지 않는 것 같다. 강화수 반MS연합팀 책임자는 "한국 시장은 아시아의 등불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며 "본보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에서 MS 소송건을 맡고 있는 김윤희씨는 "이것이 우리들에게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MS는 위험한 길로 가고 있고 우리는 싸워야 할 만큼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MS와 맞서는 길은 위험하고도 먼 여정이 될 것이다.

GINA CHON (ASIA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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