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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적자라면서 문닫은 택시회사 ‘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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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해 3월 충북 청주에서 여성 4명을 납치해 성폭행한 뒤 살해한 택시기사 안모(42)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특수강간 등 전과 4범이었다. 2005년 경기도 성남에서 발생한 항공사 여승무원 납치 살해 사건, 2007년 서울 홍대 앞 여회사원 납치 살해 사건도 택시기사가 범인이었다. 이들은 사건 당시 모두 불법 도급택시 기사였다는 게 공통점이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르면 마약·살인·성폭행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20년간 택시 운전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채용 과정이 불투명한 도급택시의 경우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불법 도급택시를 ‘도로를 굴러다니는 흉기’로 보는 시각도 이 때문이다.

 ◆대당 월 250만원 남는 장사=도급택시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회사와 기사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회사는 월급, 보험료, 차량 관리비 등을 지출하지 않고 매달 일정 금액을 챙길 수 있다. 기사는 연령, 자격 요건, 범죄 전과 등의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데다 개인택시처럼 자유롭게 영업하며 돈을 벌 수 있다. 택시업계 관계자는 “매달 월급, 보험료, 차량 관리비 등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노는 차량으로 돈을 벌어들인다”며 “기사 알선 브로커 수수료 등을 제하고도 대당 월평균 250만원이 남는다”고 했다. 국토해양부와 지자체 택시 담당자들은 법인택시 중 서울은 적어도 5000여 대(서울 전체의 23%), 시·군 등 지방은 50~70%를 도급택시로 추정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수만 대의 도급택시가 있다는 얘기다.

 ◆불법 적발해도 소송으로 빠져나가=업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단속을 피한다. 서류상 업주 명의지만 도급업자(브로커)가 비용을 들여 임대한 제2 차고지에서 도급기사를 관리한다. LPG 충전소나 기사식당을 근거지로 삼아 기사 교대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어렵게 적발해도 업주들은 번번이 처분 무효 소송을 통해 빠져나가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2008년부터 현재까지 19개 업체 276대를 적발해 감차(減車) 처분했지만 1개 업체 20대에 대해서만 승소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패소했다. 허위 장부 등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으면 처벌까지 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만성적 경영 적자라며 고충을 토로하는 택시 업주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지역 255개 택시회사 중 지난 수년 동안 단 1개의 회사도 부도가 나거나 망해 택시면허를 반납한 사례가 없다”며 “매년 적자가 나고 경영이 어려우면 누가 사업을 계속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적발된 A씨 회사는 도급택시로만 연간 벌어들이는 수입이 9억원이 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적자라면서 외제차 여럿 굴려=2011년 서울시는 업주들로부터 경영 자료를 제출받은 적이 있다. 불과 수천만원 정도 흑자가 나거나 아니면 적자라는 회사가 많았다. 서울시와 국토부 관계자는 “대부분 자체 경리직원이 정리한 자료여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적자에 시달린다는 서울 C회사는 본인·부인·자식까지 모두 억대 외제차를 몰고 다닌다” 고 비판했다. 매년 1월 말이면 서울 잠실 교통회관에서 255개 택시업주가 참석하는 조합 총회가 열린다. 서울시 택시운송조합 전직 임원은 “이날은 회관 일대가 최고급 외제차로 북적인다” 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최준호·김한별·고성표·김혜미·김소현 기자

◆도급택시=법인택시 사업주가 회사 차량을 정식 직원이 아닌 사람(전문 임대브로커나 개인)에게 임의로 빌려줘 운수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상에서는 이런 행위를 ‘명의이용’이라는 법률적 용어로 규정하고 있다. 사업면허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자에게 택시 면허 명의를 이용하게 하는 도급은 운수사업법상 명의이용금지조항에 저촉되는 불법 행위다. 택시기사는 회사와 일, 월 단위로 계약을 맺고 정해진 금액을 업주에게 입금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도급 택시기사는 회사로부터 받는 기본임금이 없으며 운행에 들어가는 유류·수리비 등 모든 비용을 본인이 부담하게 된다. 도급 계약은 다양한 형태로 맺어지는데 보험료와 차량 사고에 대한 관리책임을 회사가 일부 부담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부분과 나머지 비용 모두를 택시기사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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