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의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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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며칠전 퇴근하는 길에 여남은살먹은 국민학교 학생이 길가에서 울고 있기에 누구하고 싸우기라도 했나 싶어 울음을 달래놓고는 그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애 말에 의하면 부모들이 이따금씩 싸움을 하고는 그때마다 세간을 부수며 아이들을 때리곤 하여 겁이 나서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따뜻하게 자랄 수 있는 한평의 양지나마 마련해주지는 못할망정 이토록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혀서야 건전한 시민을 사회는 요구 할 수 있을까? 언젠가 어머니는 저녁에 아버지와 나란히 집에 들어오시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아침엔 두분이 퍽 우울한 표정들을 하고 계시더니 저녁엔 그 구름이 말끔히 가신 것이다. 아마 어디 공원 (?)에라도 가셔서 말다툼을 하신 모양이다.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로 부부싸움을 해서는 안된다는 아버지의 교훈을 나는 점점 커 가면서야 알만하다.
부모들의 몰지각 때문에 곳곳에서 소년소녀들은 악에 물들고 순진한 마음은 병들고 있다. 비록 가난은 할지언정 가난한대로 알뜰히 키워 알차고 튼튼한 나라의 기둥을 만들어야겠다.
집으로 가기 싫다는 그 소년을 억지로, 달래어 힘없이 집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제발 그 소년의 비뚤어 질 것만 같은 마음의 싹이 바로 자라기를 속으로 빌어주며 집으로 향했다. <최영익·21세·남·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지동 l04의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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