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연, 김민종과 헤어진후 최초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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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슬픔이 아직 남아 있을 이승연에게 말을 걸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렵게 이루어진 인터뷰 자리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그게 기우임을 알게 되었다. 더욱 성숙해진 모습의 그녀가 진솔하게 털어놓은 사랑, 일 그리고 나 이승연.

요즘 참 인터뷰하기 싫어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인터뷰가 싫은 게 아니라 인터뷰 중 빠짐없이 들어가는 한 가지 질문이 맘에 안 든다고 해야 되겠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다른 사람의 이별에 대해 뭐가 그리 궁금할까요. 이별이라는 것은 그 단어 자체로 슬픈 것인데 말이에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고, 어떠한 이유로 인해 헤어지게 됐다면 한동안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몰라서 물어보는 것은 아닐 텐데요. 더구나 저는 여자예요. 연예인이기 전에 여자라는 말이죠.”

처음부터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승연(33)의 속마음을 제대로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기대감도 들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녀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몇 년간 그녀는 사실 많이 지쳐 있었다. 크고 작은 사건에 휘말려 연기자로서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힘들 정도였다. 공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을까.

“도대체 공인이 뭐죠? 저는 아직도 공인이란 말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모르겠어요. 지난 3년간 정의도 모호한 ‘공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에요. 어쨌듯 지난 3년간의 크고 작은 시련들은 소중한 경험이었죠. 세상을 넓게 보는 능력을 갖게 되었거든요. 저는요, 이제 누굴 원망하거나 그러고 싶지도 않아요.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 팔자’라고 생각해요.”

도도한 여자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점점 편안하게 느껴졌다. 대화를 시작하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나니 그녀의 매력은 외모가 아니라, ‘서글서글한 여자’라고 느껴질 만큼 솔직한 모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좀더 낯두꺼운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최근에 심하게 울어본 적 있어요?
“얼마 전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서였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장면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감정에 북받쳐 엉엉 울었어요. 옆에 있던 스태프들이 민망해할 정도로….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가을이라서인가요. 저는 가을을 심하게 타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이상하죠. 요즘엔 많이 우는 역 아니면 죽는 역할만 맡아요.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2001’에서도 슬픈 운명의 역할이고…. 사실 우는 연기가 참 힘들어요. 연기로 운다는 게 말이에요. 울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김민종씨도 새 앨범을 내고 본격적인 활동을 하던데 노래 들어보셨어요?
“들어봤어요. 좋더라구요. 제가 알기에는 그 친구가 영어로 된 앨범을 낸 것이 처음일 거예요(김민종의 앨범 타이틀은 ‘YOU’RE MY LIFE’다) . 그런데 질문을 좀 돌려서 하는군요. 민종씨와 어떻게 지내는지 그게 궁금한 것 아니에요? 정말 요즘 바빠서 통 연락도 못해봤네요. 전화 좀 해봐야 되는데…. 그 친구가 하는 일 모두 잘되었으면 좋겠어요. 서로 일에 대한 생각도 주고받고 그래요. 편안한 친구처럼 말이에요.”

이승연은 요즘 새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다. MBC 수목 미니시리즈 ‘가을에 만난 남자’에서 그녀는 이혼녀인 영화사 기획실장 ‘은재’역을 맡았다. 역시 이혼남인 ‘수형’(박상원 분)과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다.

-이혼녀 역이 부담스럽진 않았나요? 김민종씨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 망설였을 것도 같은데….
“아니요. 기자들은 제가 이혼녀 역을 맡았다는 것을 대단히 이상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저는 이혼녀여서 매력적이었어요. 감독님에게 고마웠어요. 아직까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역을 맡겨주셔서요. 생각해보니 제가 그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이혼녀를 맡게 되어서 그런 것 같은데 우린 결별이지 이혼이 아니잖아요.

저는 배우예요. 제 사생활과 연기는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배우가 창녀 역을 맡았다고 그걸 이상하게 본다면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 아닌가요?”

-혼자 있을 때는 주로 뭘 하세요?
“개를 좋아하니까 개랑 같이 지내죠. 저희 집에 개가 네 마리 있거든요. 걔네들과 같이 지내면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예요. 아니면 책 좋아하니까 편한 자세로 책 보면서 그렇게 지내요.”

문득 그녀와 10년간 언니, 동생 사이로 지내는 한 방송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그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승연은 이런 여자다. 아무렇지도 않게 동네 목욕탕에 다니는 여자, 한밤중에 화장 하나 하지 않고 동대문시장이든 대형 할인매장을 활보하고 다니는 여자. 뜻밖에 그녀는 요리도 아주 잘한다. 빵 한 쪽을 구워도 맛있게 구워내는 사람, 이승연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천생 여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녀의 그런 점은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면 잘 드러난단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데다 화장대 서랍 하나하나를 다 열어봐도 흐트러짐 없이 깔끔하다고…. 실제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1~2년 지기보다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꾸준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가을이 익어가고 있어요. 69년생이니까, 승연씨의 33세 가을은 어떤가요?
정확하게 68년생이에요.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이죠. 저는요, 나이 먹는 게 좋아요. 뭐랄까. 지금보다 나이를 먹으면 어떤 일에서 건 훨씬 더 여유가 생길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너무 불안한 게 많은 것 같아서 어서 세월이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참! 가을 얘기를 물어보셨죠. 조금 야윈 내 얼굴을 보고 정말 가을을 많이 타는 것 같다고들 하는데, 요즘 몸이 너무 안좋아요. 촬영 스케줄이 너무 빡빡해서요. 그러다보니 몸살기도 있고 그래요.”

- 혹시 연예인이 된 걸 후회하진 않나요?
“아니요. 그런 건 없어요. 어차피 내 인생이잖아요. 모든 일이 그렇지만 잃은 것만큼 얻은 것도 많잖아요. 지난 3년 동안 공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이 힘들었던 건 사실이에요. 그냥 내가 살아가면서 치러야 될 일들인가보다, 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래요.”

그녀와의 인터뷰는 묘한 즐거움이 있었다. 툭툭 내뱉는 진솔한 언어들. 자꾸만 말을 걸어 그 언어들을 끄집어내고 싶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애인에서 친구가 된 김민종은 어떤 사람이냐고….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너무너무 좋은 사람이라고.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점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일 열심히 해서 너무 좋다고.”

자신이 확신하는 어떤 것을 얘기할 때 사람들은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성향이 있다. 그녀가 그랬다. 밤샘 촬영으로 지친 상태였지만 이승연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말들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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