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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유럽 8000㎞ 단축 선박 운항 3년 새 24배로 껑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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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호 14면

2012년 7월 북극해의 얼음이 녹으면서 푸른파도가 일렁거리고 뱃길이 드러났다. 북극항로(NSR·Northern Sea Route) 시즌의 시작이다. 무르만스크의 해운회사 소속 ‘인디가’와 ‘베르주가’가 탱크에 디젤을 싣고 그해의 첫 뱃길을 열었다. 최종 목적지는 항로 동쪽 끝의 페벡항. 이어 파나마 국적의 벌크 수송선 ‘노르딕 오디세이’가 철광석 6만7160t을 싣고 중국으로 향했다. 이렇게 시작된 2012년 북극 항해는 12월 핀란드 국적의 쇄빙선‘노리드카’와 ‘페니카’ 두 척이 알래스카~덴마크를 항해하는 것으로 마감됐다.
2012년 NSR엔 신기록이 수립됐다. 모두 46척이 북극해를 갈랐다. 북극해 관측 기구인 바렌틴 옵서버는 ‘약간 과장되게’ “아시아~유럽 사이의 북극해에 이처럼 많은 배와 화물이 오간 것은 사상 처음”이라고 했다. 2009년 2척, 2010년 4척이던 NSR의 선박 운행이 2011년 34척을 거쳐 2012년 48척으로 늘었다. 3년 새 24배 폭증했다. 화물도 2011년 82만t에서 126만t으로 53% 늘었다. 2012년의 46척 중 25척은 서→동으로, 21척은 동→서로 운항했다. 주역은 북유럽과 러시아, 동북아 국가들이었다.
특히 의미 있는 항해는 러시아 최대 국영 기업인 가스프롬사의 LNG 실험수송이었다. LNG 수송선인 ‘Ob 리버호’는 6만6342t을 싣고 11월 7일 노르웨이 함메르페스트항의 스타트오일 가스 공장을 출발해 8일 NSR 입구인 카라 게이트를 지나 18일 북극해의 동단인 데즈뇨바를 통과한 뒤 최종 목적지 일본 도바타항에 안착했다. 쇄빙선에 가까운 특수 선박 ‘아이스 크래스’급 리버호는 러시아 국영 쇄빙선사인 로스아톰플로트의 핵추진 쇄빙선 ‘승리 50년’ ‘러시아’ ‘보이가치’의 3단계 에스코트를 받았다.

지구 온난화, 확 뚫린 북극 항로

북극해를 항해 중인 러시아의 원자력 쇄빙선. 러시아는 6척의 원자력 쇄빙선을 보유하고 있으나 추가로 6척을 더 건조한다. 쇄빙선은 배 앞머리를 튼튼하게 제작해 얼음에 올라타는 방식으로 깬다. 다른 선박에 길을 내주기 위해 앞머리가 넓다. 북극해 얼음은 보통 두께 2m인데 신형 쇄빙선은 3m도 깰 수 있게 제작된다. [Getty Images/멀티비츠]

‘가스프롬’ 실험 항해로 상업성 확인
러시아 크릴로브 국립 연구센터와 얼음 항해 전문 연구기관인 소브콤플로트의 전문가들이 동승했던 항해의 의미는 컸다. 무엇보다 항로 단축으로 비용절감이 가능하며 경제성이 있음을 가스프롬이 직접 체험하고 NSR상업화의 길을 두텁게 한 것이다. 가스프롬은 “수에즈 운하 항로와 비교할 때 40% 이상의 거리를 줄였다”며 “이는 NSR을 통해 아시아와 유럽으로 공급하는 미래의 루트가 열린 것을 의미한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아시아의 에너지 시장을 겨냥한 유럽의 LNG 관문인 함메르페스트에서 수에즈 운하를 거치는 남방 항로보다 20일을 절약해 경영적인 의미가 컸다. 북극해의 해빙(解氷)도 거듭 확인됐다. 11월이면 북극엔 얼음이 꽝꽝 얼어붙는 시점. 그러나 바다는 얼지 않았다. 항로의 서반부인 바렌츠해~카라해 사이엔 얼음이 없었다. 그러나 동반부가 시작되는 빌키츠키 해협부터 베링 해협 사이엔 30㎝ 두께의 얼음이 떠다녔다. 그러나 ‘젊은 얼음’이었다. ‘녹고 있는 북극해’ ‘상업성을 보여주는 북극해’를 대형 고객이 될 수 있는 가스프롬이 직접확인한 것이다.


수에즈 운하 거치는 남방 항로보다 거리 40%, 시간 20일 줄일 수 있어 유조선 한 척당 경비 50만 달러 절감

NSR은 2011년 ‘혼잡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해 여름 항해 시즌의 어느 하루엔 100척의 선박이 항로에 북적댔다. 그리고 ‘기록 경쟁’을 벌였다. 모스크바의 ‘NSR 이용·조정 비영리 조합’의 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회장은 재화중량(DWT) 2만t이 넘는 선박의 NSR 통과 시간을 남방 항로와 비교했다. 물론 훨씬 빨랐다. ‘퍼시비어런스 탱커’의 무르만스크~중국 닝보 항해는 12일 걸렸다. ‘상코 오디세이’의 무르만스크~베이징은 18.5일, ‘쿠투조브’의 무르만스크~긴강(Gingang)은 10일 걸렸다. 7만4000t급 ‘스테나 포세이돈’의 무르만스크~인천은 22일 걸렸다. 통상 남방 항로의 35~38일과 비교하면 40%가 넘는 감축이다. 평균 속력은 12노트로 평균 운항 시간은 7월은 11일, 8월은 9일 이하다.
블라디미르 회장은 이 노선을 오간 대형선박 15척의 운행속도를 분석했다. 그렇게 해서 절감되는 일일 비용을 중량별로 ▶15만t 초과: 9만 달러 ▶5만~7만t: 4만~5만 달러 ▶2만~2.5만t: 2.5만 달러로 구분했다. 그는 “최대 22일까지 단축됐는데 한 척의 일일 운항비를 4만~5만 달러로 잡으면 선박들이 평균 50만 달러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0년부터 NSR을 이용한 덴마크의 ‘노르딕 벌크 캐리어’사는 2012년 8월 “올해8번 항해를 통해 연료비를 40% 절감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의 2012년 절약 목표는 520만달러다. 그런 계획이 가능한 것은 물론 NSR의 길이가 남방 항로보다 짧고 운하 사용료도 없으며 특히 인도양·믈라카해협처럼 해적이 출몰하지 않고 따라서 이를 위한 보험료가 들지 않기 때문이다. 또 NSR은 시베리아횡단 철도(TSR)에 없는 장점이 있다. TSR의 최대 물동량은 100만TEU(컨테이너 단위)이지만 NSR엔 제한이 없다. 또 TSR은 러시아나 독립 국가연합(CIS)엔 수월하게 가지만 발트해 연안 국가를 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NSR은 물론 아니다. 다만 ‘쇄빙선 비용’이 문제다.

소말리아 해적 없어 보험료도 낮아
NSR은 처음 개척되는 항로가 아니며 옛 소련 시절인 1930년대 활용이 시작해 87년 최대 658만t의 물동량이 움직였다. 그러다 옛 소련 붕괴 이후 98년 최저 146만t으로 떨어져다. 2009년 재개 움직임이 시작됐지만 겨우 두 척의 화물선이 64만3000t을 날랐다. 블라디미르 회장은 “쇄빙선 사용료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가 인용한 러시아 업계 자료에 따르면 수에즈 운하의 통과료는 화물 t당 5달러 정도. 그러나 러시아 쇄빙선 이용료는 t당 20~30달러였다. 선사들이 찾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2011년 7월 NSR 활성화를 기대하는 러시아 당국이 손을 대 가격을 낮췄다. 현재 이용료는 t당 4~5달러 수준이다. 이후 2011년 물동량은 2010년의 11만1000t보다 7배 넘게 치솟았다.

화물 t당 20~30달러 쇄빙선 이용료 러, 4~5달러로 내리자 물동량 폭증 주로 가스·석유 - 화물 다양화 관건

러시아 당국은 쇄빙선 개발에 역점을 둔다. 고성능 쇄빙선으로 NSR 연중 항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영 쇄빙선 회사인 로스아톰플로트 측은 “최적 항해기는 7~8월 여름이지만 78년부터 NSR의 연중 항해가 가능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5~2016년 물동량이 500만t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 경우 필요 쇄빙선은 연 100척이다.
그러나 현재 주로 가동되는 러시아 원자력 쇄빙선은 6척이다. 부족하다. 그래서 러시아 정부는 2011년 신형 쇄빙선 6척 추가 건조를 결정했다. 3대는 핵 추진, 3대는 디젤 추진이다. 폭도 보통 쇄빙선의 30m에서 34m로 늘려 능력을 키웠다. 북극 항로는 물론 시베리아 내륙하천의 하구에도 운항이 가능하며 3m 두께의 얼음도 깬다. 북극 항로빙하의 평균 두께는 2m다.
당장의 문제는 화물의 구성이다. 현재는 가스·석유 가공품이 주축이다. 2012년 디젤, 가스 콘덴세이트, 제트연료, LNG, 기타 석유관련 상품 89만t이 운송됐다. 가장 중요한 일반 화물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항로가 제대로 열리지 않아 미지의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개선될 전망이다. 러시아 교통부는 2020년 물동량을 6400만t으로 전망한다. 한국 해양수산개발원은 2030년 화물이 최대 4600만TEU가 될 것으로 본다. 대체적으론 2015년 1개월, 2020년 6개월, 2025년 9개월 운항이 가능하며 2030년엔 완전 상업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되면 화물 구성이 훨씬 다양해지고 북극 항로는 정식 지구촌 물류로 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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