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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럭셔리’ 새로운 물결소유를 넘어 경험하게 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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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호 08면

마티아스 벵슨이 인더스트리 갤러리에 전시한 Spun Carbon-Fiber Bench’. 과학적인 포맷으로 가구의 기능에 아름다움과 기술을 담아 관객을 놀라게 한다.

여느 해와 다름없이 전 세계 아트 시장을 둘러보며 바쁘게 지내다 보니 한해를 정리하고 마감할 새도 없이 새해가 시작됐다. 2012년은 신선한 컨셉트의 다이내믹한 작품들이 세상에 쏟아져 나오며 예술과 예술 산업이 함께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깊었다.
필자는 지난해 12월 5일부터 8일까지 홍콩에서 열린 ‘2012 비즈니스 오브디자인 위크’에 참여했는데, 이 행사에서 만난 세계적인 건축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디자이너들과 함께 예술계의 현재와 새로운 물결에 대해 공감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뉴욕 쌍둥이 빌딩이 있던 자리에 새롭게 자
리할 프리덤 타워를 설계한 대니얼 리베스킨드(Daniel Libeskind)와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로 꼽히는 론 아라드(Ron Arad), 일본 출신 건축계의 거장 세지마 가즈요(Kazuyo Sejima), 산업 디자인의 전설 리처드 사퍼(Richard Sapper), 엔지니어링과 혁신적인 소재를 디자인 프로세스에 적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토머스 헤더윅(ThomasHeatherwick) 등이 그 주인공들이었다.

2013 예술계는 지금

1 로낭 & 에르완 부홀렉, 퐁피듀 미술관 전시 2 톰 프라이스, PP Tree, Industry Gallery 만개한 벚꽃 나무를 연상시키는 나무들은 버려진 폴리프로필렌 파이프와 실용 플라스틱 제품으로 만들어졌다. 3. 조셉 월쉬,Wooden Furniture 4 톰 프라이스, Meltdown Chair: PP Blue Rope 5 톰 프라이스, Meltdown Chair: PE Pink

강연자로 나선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내용이 있었다. 앞으로의 예술은 ‘감성적인 접촉’‘소통’ ‘재미’와 ‘유머’, 그리고 ‘좀 더 나은 사회’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표현될 것이라는 점이다. 강연자 중 한 명이었던 대니얼 리베스킨드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나는 시인과도 같습니다. 내가 설계하는 빌딩에는 나의 모든 감정이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는 선 하나하나는 나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지어진 빌딩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에 조금씩새로운 변화가 생기다 보면 그것이 나아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실제로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감정이라는 인간적 가치는 더 소중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감정이 담긴 시간(순간)을소중히 여긴다. 그 시간은 그대로 남겨두거나 온전히 소유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소중하고 가치 있다. 예술가는 이 찰나적 순간을 자신만의 관점을 살려 작품으로 표현해 내고 그것을 특정 계층에게 보여주었다. 특정 계층의 사람들은 이 ‘순간’을 소유함으로써 ‘럭셔리(luxury)’를 만끽했다.
그러나 사물을 ‘소유’한다는 개념은 더 이상 ‘럭셔리’를 온전히 대변하지못한다. 예술은 점점 ‘소유’를 넘어 ‘경험하는 것’ ‘느끼는 것’ ‘대중에게영향력을 미치는 것’ 등을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바로 이것이 다가오는 시대의 ‘뉴 럭셔리(new luxury)’인 것이다.

6 마티아스 벵슨, Plywood Slice Chair 7 마티아스 벵슨, Cellular Chair 8 마티아스 벵슨, Paper Chair 9 마티아스 벵슨, Aluminum Slice Chair수평 방향으로 잘린 알루미늄을 써 유니크한 의자의 옆모습을 볼 수 있다.

예술, 세상 밖으로 나와 더 많은 사람과 접촉
이제 예술가들은 스스로를 디자이너 혹은 조각가, 또는 러시안 작가, 여성 작가라는 식으로 카테고리화해 정의하지 않는다. 성별이 없어지고, 국적이 없어지고, 경계가 모호해지며 그 안에 순수하고 본질적인 미의 가치만 남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작품 자체의 핵심이 되는 아름다움을 전해 순수한 기쁨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에 의해 창조되는 예술계에서는 아티스트가 디자인을 하고, 디자이너가 공공 예술을 한다. 프라이빗한 모습의 예술이 세상 밖으로 나와 더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이다. 기존에 예술이 가졌던 영향력보다 더 광범위하고, 더 큰 커뮤니티에서 호흡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기대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고 있는 3명의 작가가 있다. 토머스 헤더윅과 톰 프라이스(Tom Price), 그리고 마티아스 벵슨(MathiasBengtsson)이다. 30대 후반~40대 초반의 비슷한 또래로, 모두 영국 왕립예술대학원(Royal College of Art)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으나, 이들의 활동을 순수 예술로 규정지을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미에 대한관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최첨단의 기술과 과학을 응용해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고 있는 이들의 활동은 가히 천재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이들은 건축가, 패션 디자이너, 가구 디자이너들과 함께 작업하고,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지속해서 새로운 활동을 선보인다. 이들의 작품은 디자인과 맞닿아 있고 기능적 역할에 충실하며 그 형태는 아름답게 구현된다. 또 그들이 추구하는 소재는한계가 없고 유연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0 토머스 헤드윅, Seed Cathedral(UK Pavilion), 상하이 엑스포 6만 개의 촉수 끝에 쿤밍 식물연구소에서 제공받은 씨앗들이 들어 있다. 낮에는 태양빛을 받아 광섬유처럼 빛이 나고, 밤에는 내부에 설치된 광원에서 빛을 낸다.11 토머스 헤드윅, Spun Chair12 토머스 헤드윅, East Beach Café, 영국 리틀 햄튼

순수 미술과 디자인이 어우러진 회색지대
영국 디자이너 톰 프라이스의 작품은 틀에 박히지 않은 소재와 방법으로 탄생된다. 흔하고 익숙하게 보아온 재료들이 완전히 새로운 아우라를 품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예술성을 가지는 동시에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준다. 대표적인 설치미술 작품 ‘체리 트리’는 PP플라스틱 튜브를 주재료로 만들어졌는데, 워싱턴 벚꽃축제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것이다. 플라스틱 튜브를 구부리고 엮어 조그만 구멍들을 통과하는 빛이 만들어 내는 은은함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재료 고유의 아이덴티티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새롭게 해석한 그의 작품은 순수예술과 그 흐름이 같다. 그는 순수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어떻게 생각할까. “예술과 디자인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과 예술을 서로 상반된 것이나 아예 다른 영역으로 분류하기 쉽지만, 그 둘 사이에는 커다란 회색 영역이 있어요. 그것은 주로 주관적이며 대부분 문맥에 따라 달라지지요. 나는 순수미술과 디자인의 구분을 포기했고, 그 회색 영역 안에 있는 것이 행복합니다. 디자이너 또는 아티스트라는 단어 모두 내가 하는 일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덴마크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 중인 마티아스 벵슨은 산업 디자인계에서는 이미 유명인이다. 조각적인 형태의 가구를 통해 기술적인 혁신성을 비주얼적으로 표현한 가구로 주목받고 있는 그 역시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와 한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알루미늄·종이·나무 등 보통의 재료들과 과학적인 포맷이 결합한 작품을 선보이는 그의 디자인은 가구의 기능을 가져가면서도 아름다움과 기술을 담아 관객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수준의 아트를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Slice’ 시리즈라고 불리는 조각적인 형태의 가구들이다. 최신 테크놀러지인 컴퓨터 레이저 커팅 방식을 사용한 것으로 나무 이외에 알루미늄으로도 제작된다. 평범한 재료에서 새로운 컨셉트를 찾는 과정을 최대한 활용하는 그의 디자인은 수많은 가능성에서 출발하는 듯하며, 디자인의 개념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재료에 대한 호기심과 스토리 있는 디자인
토머스 헤더윅은 건축·엔지니어링·도시계획·가구·조각·제품 디자인까지 전반적인 디자인 프로젝트를 포괄한다. 재료의 혁신적인 사용을 디자인 프로세스에 적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재료를 향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감성과 스토리가 있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그의 디자인 철학은 독창적이며 또한 가끔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2004년 왕립 디자이너로 인증된 그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로 2010년 상하이 엑스포의 ‘영국 파빌리온’, 런던의 상징 이층버스를 리뉴얼한 ‘루트 마스터’ 등이 꼽힌다. 전 세계에서 진행한 디자인, 그리고 건축 프로젝트가 크게 성공할 수 있던 비결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자 그는 말했다.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롭고 매력적인 일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이상을 가지고 있고 그 아이디어를 삶에 적용시키는 것입니다. 건축가로서 나 자신과, 아티스트 그리고 디자이너로서의 나의 역할은 끝없는 정보들을 스폰지처럼 흡수해서 작품으로 표현해 내고, 작품을 통해 대중의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지 않으려 하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천성 중 가장 아름다운 면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지속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도시 곳곳에 그곳에 어울리는 성격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벗어나 더 넓은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호흡하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이들의 활동은 예술이 가질 수 있는 수천 가지의 형태를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신선하다. 한계와 경계를 허무는 그들의 활동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하고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세상이 변하는 것만큼 예술계도 변화하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한계를 초월하고, 비주얼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도전적인 작품을 원한다. 세상이 위와 같은 작가들을 필요로 하는 명확한 이유일 것이다. 머무르지 않고 경계 없이 탐험하며 핵심만을 골라 대중에게 전하는 이들과 같은 예술가가 보여주는 새로운 물결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뉴 럭셔리(new luxury)’이자 이 시대가 원하는 ‘뉴 라이프스타일(new lifestyle)’의 모습이 아닐까.<번역 정리 최현정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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