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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주간을 맞아|홍종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권력횡포의 방패>
국가의 올바른 정치질서를 위하여 정치가에게 「긍지」가 요청되는 그 만큼, 사회의 정의와 청신한 기풍의 확립을 위하여 신문과 신문의 긍지가 절대 요청되는 바인 것이다.
그러면 신문의 긍지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 하면 이는 신문발행인이나 사장 또는 사주 (사주)라고도 하는 경영자의 견식과 그 운영방침에도 따른다 하겠지만 그 보다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실제로 신문제작에 종사하는 신문기자들 자신이 자신들의 사회적 직책을 위하여 걸어나갈 바 기자도란 것을 확립하도록 노력하지 않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신문은 사회의 거울이요 또 목탁이라고도 했고 신문기자는 무관의 제왕이라고도 했다. 이는 신문의 입으로서는 감히 말할 수 없는 과람한 칭송이요 또 지나친 대우의 말씀이 될 것이나 일반사회에서 신문과 그 기자에게 바랄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도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문이야말로 사회대중의 양심을 밝힘으로써 권력의 횡포를 억제할 수도 있고 또 나아가서는 사회의 부패 한구석을 드러냄으로써 청신한 분위기 속에 서로 믿고 의지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길을 더 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럼으로 해서 신문의 자유와 독립이 높이 평가되고 있고 정치의 올바른 길과 국가의 부강을 위하여 정치에만 기대할 것이 아니고 신문과 신문기자들의 망민하고 과감한 활동이 또한 크게 기대 된다는 것이 오늘의 민주국가의 한 장식인 것이다.

<조화와 균형만이>
우리들이 여기서 신문과 신문기자의 긍지를 높여야 할 것을 생각 할 때, 먼저는 사람으로서 떳떳한 양심을 가져야할 것이고 다음은 자신의 직책을 원만히 이룩하기 위해서 사회의 여러 부면을 해부 비만 할 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고, 그리고 그 태도와 방법은 어디까지나 공동사회의 커다란 이익을 위한 하나의 국가적 목표에 집결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조화와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 절대 필요하다할 것이다. 균형을 도모함으로써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견제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조화를 이룩함으로써 협동과 양보·절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만일 신문과 신문기자가 그 사진을 찾지 못하고 기자로서 올바른 길을 찾아 나갈 기자도를 저버린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는 두려운 일이 될 것이다. 사회악의 조장의 도구가 되고 그 자신들은 폭력배나 다름없는 것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크게 개탄하며 시정을 촉구하고있는 일 중의 하나가 사회의 「오대악」(5대악)이니 「구대악」이니 하는「부패」라는 것이다. 나라의 중추신경이라고 할 수 있는 관청의 공부원이며 또 이들과 관련을 맺고있는 중요사업단체 등이 자못 썩어있다.
그러면 이러한 부패라는 사회악이 번져 나가는데 신문과 신문기자란 존재는 과연 어떤 위치에서 어떤 작용을 하고있었느냐 할 때 그 원인과 그 족속은 별도로 가려서 시비논란을 하여야 하겠지만 크게 보아 신문과 신문기자라고 할 때 정치의 빈곤, 공무원의 부패, 사업단체의 부정의 이면에는 기자들의 정신의 빈곤·부패·부정이 또한 상당한 범위로 개재되어 있음을 부정키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물론 신문과 기자에도 사이비라는 종류가 없지 않다고 하지만)모름지기 신문은 사회의 부패를 폭로하고 냉혹한 비판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자기비판과 자신의 주변을 경계할 것을 결코 게을리 해선 아니 될 것이다.

<독립정신 살려야>
신문의 긍지를 높이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나라 신문의 전통을 높이 받들어 마땅할 것이다.
서재필 박사의 주재로 발간되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신문의 형태를 갖추었던 「독립신문」은 마침 금년이 창간 70년에 해당한다.
1896년4월7일에 발간된 「독립신문」은 다른 선진국가라는 나라에서 흔히 있듯이 자연발생적으로 발간된 종류의 신문과는 성격을 완전히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청일전쟁 후 나라는 명목상으로 독립국가로 되어있었으나 외세의 침입은 날로 심각해가며 나라의 명맥이 아침저녁으로 기울어져 가는 그 난국에 정부요인을 깨우치고 그리고 외세의 침략의 흑막을 폭로함으로써 국민으로 하여금 국가의 독립을 위한 애국의 정열을 북돋우고자 하는 거룩한 뜻에서 민간단체로 독립협회운동을 일으키며 그와 동시에 신문을 발간키에 이르렀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구라파의 민주사상이 소개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 할 것이다. 즉 국민의 나라, 국민의 힘으로 나라를 바로 잡자는 애국정신으로써 온 국민을 깨우치라는 것이었다.
그 후 일본의 한국합방 10년에 3·1운동 때에 수십만 애국자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서 일본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저들의 탄압 속의 약간의 언론자유-즉 동아일보·조선일보의 발간이 허가되었던 것이다.
그 어느 것이나 민족의 자유, 국가의 독립, 사회의 개화를 위하여 선봉이 되었던 것이다. 그때 그 신문 그 기자님의 기백을 우러러보며 우리는 오늘 새삼 신문의 긍지, 신문기자의 기자도를 외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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