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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특별기고

쿠베르탱 탄생 150주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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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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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게도 새해 첫날은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설계하는 때다. 올해 1월 1일은 개인적으로 더욱 뜻깊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쿠베르탱의 탄생 150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쿠베르탱의 좌우명 중 하나가 “멀리 미래를 내다보자”였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쿠베르탱 본인도 자신이 고안한 근대 올림픽이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문화적 이벤트 중 하나로 성장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쿠베르탱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창설한 후 118년이 지난 지금, 올림픽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자리 잡았다. 쿠베르탱도 지난해 런던올림픽의 성과를 본다면 매우 기뻐했으리라. 지난해 런던올림픽은 의심할 여지 없이 역사상 최고의 올림픽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런던올림픽은 사상 최초로 여성 복싱 경기를 개최하고 환경친화적인 경기시설을 건설하는 등 양성평등과 환경 문제에도 기여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유스올림픽 역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IOC는 올림픽의 가치를 계속 발전시키고 전파시키기 위해 유엔과도 손잡고 다양한 활동을 펼쳐 왔다. 스포츠 발전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강화되고 확장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또 지난 60년 최악의 세계 경제위기를 맞이했음에도 IOC의 재정상태가 어느 때보다 건전하다는 사실은 감사한 일이다. 여러모로 2012년은 올림픽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2012년의 여운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면서 쿠베르탱이 19세기 말 올림픽을 거의 혼자의 힘으로 부활시킨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돌이켜보게 된다. 쿠베르탱은 스포츠가 신체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유익하며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으며 페어플레이 정신을 고취함으로써 인류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이지만 쿠베르탱의 시대에는 그렇지 못했다. 당시 사람들은 스포츠를 경박한 행동으로 치부하며 학문에 방해가 될 뿐이라고 경시했다. 올림픽을 부활시키자는 쿠베르탱의 주장에 사람들은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거나 아예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사람들은 쿠베르탱에게 올림픽을 부활시키는 건 “불가능한 꿈”이라고 몰아붙였다.

 쿠베르탱은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확신을 갖고 시간과 노력을 희생하고 주머니를 털어가며 고대 올림픽 정신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개인적 이익이 아닌 인류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였다. 그는 스포츠를 통해 우정과 존경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키울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의 노력은 결국 빛을 봤다. 그의 뜻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조금씩 늘어갔고, 뜻을 함께 하는 개개인은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894년 IOC가 창설됐고 2년 후 그리스 아테네가 근대 올림픽의 첫 번째 개최지로 선정됐다.

 쿠베르탱은 IOC의 제2대 위원장으로 1896년에서 1925년까지 29년을 재임했다. IOC 역대 위원장 중에선 가장 오래 재임한 셈이다. 퇴임 후에도 그는 올림픽 정신을 발전시키고 공정한 경쟁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매진했다. 쿠베르탱은 올림픽 경기뿐 아니라 오륜기, 개폐회식, 선수단 선서 및 올림픽 박물관과 같은 올림픽 관련 상징물을 만드는 데도 공헌했다. 무엇보다도 올림픽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올림픽헌장 역시 그의 작품이다. 올림픽헌장이 있기에 올림픽과 IOC는 다른 스포츠 경기 및 기관과 차별화된다. 올림픽헌장에 따르면 IOC는 단지 올림픽 경기를 개최하기 위한 기관이 아니라 인류애를 위해 스포츠를 촉진할 권리와 권한이 부여된 조직이다.

 쿠베르탱은 1937년 세상을 떠났고 그 이후에도 올림픽과 IOC는 계속해서 여러 장애물에 맞닥뜨렸다. 그러나 올림픽헌장이 제시하는 윤리적 나침반이 있었기에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 아마 쿠베르탱도 자신이 꿈꾼 핵심 가치가 면면히 이어져 왔다는 데 기쁨을 느낄 것이다. 2013년 새해 첫날, 쿠베르탱의 탄생 150주년을 맞이하며 올림픽 정신을 지키기 위한 그의 헌신을 되새겨본다. 

글=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정리= 전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