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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부동산·건설로 떼돈… ‘부부 동업’ 공통점

중앙일보

입력

‘여성들은 능히 하늘의 반(半)을 떠받칠 수 있다(婦女能頂半邊天)’. 마오쩌둥(毛澤東)이 1968년 한 말로 전해진다. 여성들을 생산현장으로 끌어내려는 속뜻이 담긴 말이기도 하다. 그 의도가 어쨌든 현대 중국의 여성들은 이미 ‘하늘의 반’이라는 말이 무색지 않게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다. 재계라고 다르지 않다.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수퍼 리치 우먼(Super Rich Woman)’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스타급 여성 부호들의 등장은 여권 신장의 상징이자 고도성장 신화의 축소판이다. 중국의 수퍼 리치 우먼, 그들은 누구일까.

우야쥔, 위자료 3조원 ‘통 큰 이혼’ 화제
신문사 기자가 그의 꿈이었다. 84년 시베이공과대학(西北工業大學) 졸업 직후 자신의 전공을 살려 주택건설부 기관지인 ‘중국시용보(中國市容報)’에 취직했다. 처음 배치돼 일한 곳이 건설·부동산 담당 부서였다. 취재 경험을 쌓으며 부동산시장을 알았고 업계 인맥을 쌓아 나갔다. 그렇게 맺어진 부동산과의 인연은 그를 중국 최고의 여성 부호로 만들었다. 부동산 개발회사인 룽후(龍湖)그룹 회장인 우야쥔(吳亞軍)의 얘기다.

우 기자는 부동산시장의 날림공사를 눈여겨봤다. 자신이 만들면 더 잘할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93년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과 함께 룽후그룹의 전신인 충칭자천경제발전유한공사(重慶佳辰經濟發展有限公司)를 설립했다. 그가 충칭에 건설한 난위안(南苑)·시위안(西苑) 아파트는 ‘대박’을 쳤다. 조경, 울타리 조성 등 당시로선 획기적인 상품을 내놓았던 게 성공 비결이었다. 업계 관계자가 “룽후 부동산의 아파트는 채소보다 더 쉽게 팔렸다”고 회상할 정도다.

그의 사업은 때마침 불어닥친 부동산 개발 붐을 타고 번창하기 시작했다. 충칭에 이어 상하이(上海)·베이징(北京)·산둥(山東) 등지로 사세가 뻗어 나갔고 2009년 회사를 홍콩증시에 상장하면서 재산이 급속히 불어났다. 그의 총재산은 현재 380억 위안(약 6조7200억원). 중국의 부호 리스트인 ‘후룬(胡潤) 보고서’에서 여성 부호 1위에 올라 있다. 지난 8월 전 남편과 이혼하며 위자료로 161억 위안(약 3조원)을 내줘 화제를 낳기도 했다.

우야쥔은 중국 수퍼 리치 우먼의 전형이다. 우선 부동산 업종에서 부를 쌓았다. 2012년 후룬 여성 부호 리스트에 오른 6대 부호 가운데 5명이 주택·상가 개발 등으로 돈을 벌었다. 10위권에서 7명이 부동산을 주력 업종으로 한다.

이런 현상은 경제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은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약 40%를 부동산 연관 업종이 차지할 정도로 부동산 비중이 크다. 개혁·개방 이후 지난 30여 년간 소비보다는 투자 위주의 경제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건설경기가 달아올라 관련 업체들이 초호황을 누리고, 부동산업은 곧 폭리 업종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것이다.

재산 340억 위안(약 6조원)으로 중국에서 ‘가장 돈 많은 할머니’로 통하는 천리화(陳麗華·71) 푸화(富華)그룹 회장도 비슷하다. 82년 일찌감치 홍콩으로 건너가 별장을 사고팔던 천 회장은 이후 베이징 중심가의 노른자위 땅을 집중적으로 사들이며 재산을 불렸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가구 수리상으로 생계를 이어 가던 그는 82년 홍콩으로 건너가 중개무역과 부동산업에 나섰다. 도약의 발판은 홍콩반환협정(84년)을 앞두고 부동산 시세가 떨어지던 타이밍이었다. 그는 홍콩 요지의 별장 12채를 헐값에 구입한 뒤 높은 가격에 되팔면서 사업 수완을 발휘했다.

도전정신 강한 중국 여성 특징이 한몫
여성 부호의 공통점은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점이다. 우야쥔 부부가 그랬듯 아내와 남편이 동업자가 돼 함께 부를 일군 사례가 많다. 창의적인 건축디자인으로 중국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소호(SOHO)차이나의 장신(張欣·47) 최고경영자(CEO)도 그런 사례다. 그는 남편과 함께 철저하게 업무를 분담하는 대표적인 부부(夫婦) 경영인이다. 남편인 판스이(潘石屹) 회장은 해외 분야와 주요 경영전략을 담당하고, 자신은 건축설계와 협상·판매·대정부 관계 등을 챙긴다.

장신은 14세에 홍콩으로 이주해 의류공장 근로자로 일하면서 야간학교를 다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원을 졸업한 재원이다. ABC(Asia Business Council)포럼·세계경제포럼 등의 회원이며 골드먼삭스 애널리스트로 활동한 경력도 있다. 장신은 재산 규모를 떠나 중국 부동산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유력 인사이자 전 세계가 주목하는 큰손으로 통한다.

홍콩증시 상장(上場)이 막대한 부를 안겨 준 것도 주요 특징이다. ‘후룬 여성 부호’ 상위 6명 가운데 우야쥔 회장과 양후이옌(楊惠姸) 비구이위안(碧桂園) 부회장(부친이 홍콩증시 상장), 루치앤팡 야쥐러(雅居樂) 부회장, 장인(張茵) 주룽(玖龍)제지 회장, 장신 CEO 등이 모두 홍콩증시에서 기업을 공개했다. 중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하던 시기를 최대한 활용해 사업은 중국에서 하되 홍콩의 금융허브 기능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2001년) 이후 ‘홍콩 경유 루트’를 접고 중국 대륙으로 직접 진출하는 방안만 생각해 온 한국 기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장인(주룽제지) 회장의 경우 홍콩을 중심으로 한 효율적인 글로벌 공급망 관리에 성공 비결이 있다. 그는 90년 미국 이민 후 폐지 회수사업을 시작했고, 이 원료를 광둥성에 세워 놓은 재활용 처리 공장으로 보냈다. 장인 회장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90년대부터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고 수출이 급증하면서 포장용 크라프트지를 중심으로 제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그는 미국에 살면서 홍콩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앞으로도 사업은 중국 중심으로 할 것이라고 한다.

중국 여성들이 세계적인 부호로 부상한 요인 중에는 사회·역사적 분위기와 중국 여성 특유의 도전정신도 작용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중국 최고의 마케팅조사기관으로 통하는 허라이즌그룹의 위안웨(袁岳) 박사는 세 가지 핵심 요인을 꼽는다.

첫째, 여성 창업자 수가 남성보다 절대적으로 많다. 중국에 등록된 민간기업 소유주 가운데 20%가 여성이며 이 비율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둘째, 여성 부호 중에는 양쯔(揚子)강 유역 출신이 많은데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중국에서 일찌감치 여권이 신장된 곳으로 통한다. 그만큼 여성들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란 얘기다.

셋째, 70년대 후반부터 계속된 ‘1가구 1자녀’ 정책으로 남녀 차별 경향이 완화된 것도 작용했다. 최근 부모로부터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는 부호 2세 중에는 아들보다 딸이 훨씬 많아지는 추세다. 재산이 최소 330억 위안(약 5조8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진 양후이옌 부회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창업자이자 회장인 부친이 2007년 홍콩증시 상장을 앞두고 재산의 70%를 떼 주면서 30세의 젊은 나이에 일약 억만장자 대열에 올랐다. 블룸버그통신은 양후이옌 부회장이 2위인 천리화는 물론 남편과 이혼 후 재산이 줄어든 1위 우야쥔을 제치고 중국 최고의 여성 부호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그의 재산이 조지 소로스와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을 앞질렀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중국 여성 부호들의 미래는 어떨까. 업종 기준으로 보면 관측이 엇갈린다. 먼저 재산 규모가 급감할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여성 부호 대부분이 부동산 재벌인데, 중국에서 부동산은 더 이상 돈을 긁어모으는 폭리 업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는 부동산 경기 억제대책이 단기간에 변화할 가능성이 크지 않아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더 이상의 재산 증식은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다른 주장도 있다. 중국 정부가 경제구조 조정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환경·에너지·자원·서비스 등 신성장동력 분야를 육성하고 있는데 이 분야에서 여성들이 얼마든지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여성들의 사회 진출 확대와 권익 향상 추세를 감안하면 여성 부호들은 앞으로도 늘어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가구별 전체 수입에서 여성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이 50년대엔 20% 안팎이었으나 요즘 40%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런 추세는 현재진행형이다. 또 고교·대학·대학원 학생의 여성 비율은 모두 50%를 넘어섰다. 중국 정계에서도 여성 파워가 강하다. 전국인민대표대회(의회 격)와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대의원 중 여성은 5명 중 한 명꼴이다. 국무원(행정부)에서 부총리급 이상은 8명이고, 지방에선 시장·부시장도 670명이나 된다. 앞으로 여성 부호가 더 많이 배출될 가능성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박한진 상하이 푸단대(復旦大) 경영학 박사. 『10년 후, 중국』 등 10권의 저서를 출간했고 『화폐전쟁』 시리즈를 감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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