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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심포지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서울의 거리는 명랑한 거리-.
그 중에도 명동거리는「샹젤리제」같이 넓고 아름답진 않지만, 그런대로 서울의 화사한 유행의 중심이요, 전시장. 극장이 있고, 고급 양장점이 줄지어 늘어섰고, 대폿집에서「스탠드·바」에 이르는 대소주점이 무수히 깔렸고, 그러한 현세의 방종에 경종을 울리는 성당이 있다. 그런데 그 거리가 최근엔 나라의 으뜸가는 선비들을 위한「심포지엄」의 보금자리로 등장해서 색다른 화제가 되고 있다.
「심포지엄」은 향연을 뜻하는 말이고,「플라톤」이 남긴 유명한 한 대화편의 이름이기도하다.「소크라테스」·「아리스토파네스」, 그리고「알시비아데스」와 같은 고대 희랍의 쟁쟁한 선비들이 시인「아가톤」네 집에 모여서 주연을 벌이고, 사랑을 논한다. 스승과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정담을 즐기는 풍습은 비단 고대희랍에만 있던 것은 아니다.
공부자만 해도 주량이 무량이었고 그가 젊은 제자들과 함께 술을 나누면서 시와 예와 정치를 즐겨 논했다고 해도 조금도 어색할 것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또 어느 나라에서이고 술이 선비의 사귐을 해칠순 없다. 예를 갖추고 화제의 소를 얻기만 하면 스승과 장성한 제자간의 주막은 훌륭한 교육적 효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최근에 어떤 대학의 교직자들이 학생회 간부들을 위해서 베푼 주막은,「플라톤」의 향연이나, 공부자의 주석과는 까닭이 다른 것이었다. 우선 그 소란은 시인의 집도, 스승의 사택도 아닌, 장안서도 이름난 유흥가에 자리 잡은 한 요정에서 벌어졌다. 교육사상에 아마도 전무후무할 이 향연에서 어떤 종류의 정담이 오고 갔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향연이 끝난 다음 밤거리를 누비며 소란을 피웠다는 학생들의 기세로 보아 그들이 시와 사랑과 철리를 논한 것 같지는 않다. 명동「심포지엄」이 학원정상화나 교관확립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 뜻은 가상했다.
그러나 주최측이 생각해 낸 수단은 학원과 교관의 근본을 짓밟는 무모한 것이었다. 도시 언제부터, 그리고 어떻게 해서 이 꼴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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