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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회-이봉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를 맺은 사람들끼리 졸업식전에 한번 있을 법도한 사은회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수첩을 뒤질 때마다 사은회 날짜가 다가오는 것이 우울해진다. 그도 해를 거듭하면서 더한 것 같다.
사은회는 학생들이 「선생님들의 수고」를 감사하는 뜻에서 위로겸 모이는 회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와 어긋나는 일이 더 많다. 우선 학생들이 부모님들의 주머니를 짜내 가지고 와서 사은회를 하는 것부터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리고 모이는 장소가 복잡한 요정인 경우가 많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졸업식 계절이 오면 너도나도 사은회를 하게되어 조용한 곳이 별로 없다. 그런가하면 요정의 종업원들은 음식그릇을 함부로 갖다 내던져서 불쾌하다. 학생들은 시간을 지키지 않고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 으례 30분쯤은 늦게 가야 알맞을 정도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들은 미장원에도 가야하고 새 옷도 맞춰 입고 오느라 자연 늦게 마련인 모양이다.
그 중에도 딱한 것은 노래다. 나같이 음치요 노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은 음식도 제맛이 안날 정도이다. 긴 세월을 해마다 겪어서 이젠 노래야 되거나 말거나 그 자리를 면하기 위해 얼버무려 때우지만 이런 고역은 다시없다. 사은회가 아니라 사학회다. 하기야 4년을 같이 지내다가 헤어지는 마당에서 다같이 모여 차라도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뜻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나친 유행병에서는 벗어났으면 좋겠다.
차라리 졸업 후 먼 후일에 가정에 있거나 직장에 있거나 문득 옛 선생이 생각돼서 찾아와 주거나 집으로 초청해주면 얼마나 감격스럽고 가벼운 맘으로 가서 만날 것인가 생각해본다. 그때는 서로 차분하게 지난날의 이야기로 꽃을 피울 수 있을 것 같다. <이대교수·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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