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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험프리」 부통령의 국회방문을 통해서 화제에 오른 「필리버스터」는 소수의 거의 유일한 무기. 미국서도 하원의원에겐 없고, 상원의원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한번 발언권을 얻으면 스스로 포기하거나 자기편 사람에게 넘겨줄 때까지 무제한으로 발언을 계속할 수 있는 권리이다.
「필리버스터」는 원래 해적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19세기 중엽이래 미국상원의 독특한 의사진행 방해법을 가리키는 말로 되어버렸다. 「험프리」 부통령이 말한 25시간 기록과 자신의 13시간 기록은 혼자서 지껄여 댄 기록일게고 얘길하다보면 생리적 요구로 쉬어야하고 밥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늘어난다. 독주 「마라톤」발언이 아니고 「릴레이」식 발언으로 번지게되면 열흘도 그만, 한달도 그만이다. 「필리버스터」가 시작되면 방청석이 만원이 될 정도로 큰 구경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행정부나 다수쪽에서 낸 법안을 물리치는데 흔히 실효를 거두는 보람 있는 방법이다.
안건과 관계 있는 얘기만 해선 그렇게 오래 끌 수 없다. 그래서 문학전집쯤을 안고 들어가서 「오린지·주스」를 마셔가면서 수필·시·단편·소설·「이소프」이야기 따위를 줄줄 읽어댄다. 30년대에 「루스벨트」와 맞서서 말썽을 부린 「루이지애나」주 출신 상원의원 「휴이·롱」의 「필리버스터」가 청사에 빛난다. 「롱」은 있는 화제를 다 소진한 다음에 「뉴올리언즈」에서 나는 게의 요리법이며 「코피」를 맛있게 끓이는 법이며를 한없이 풀어 나갔다.
「험프리」 부통령이 무슨 문제로 13시간씩이나 「필리버스터」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는 원래 「필리버스터」를 제한하는 것을 바라는 사람이었고 「필리버스터」를 죽이는 안을 들고 나와서 13시간의 「마라톤」 발언을 했다고 생각하면 더 재미있다. 「필리버스터」 때문에 골탕먹기로 유명한 것은 「윌슨」 대통령이었는데 그때부터 여러 번 「필리버스터」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47년에 본 결정으로 재적 2/3의 찬성을 얻으면 종결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상 「필리버스터」를 막는 효과적 방법은 없다. 워낙 오랜 전통이고, 의회소수의 유일한 무기이며, 미국과 같은 민주국가에선 오늘의 여당이 내일엔 야당으로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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