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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으며 쌓은 온정 … ‘카드 기부’ 70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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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대기업에 다니는 박모(40)씨는 올해 처음 ‘기부’라는 걸 해봤다. 신용카드사 사이트에 접속해 한 해 동안 모은 카드 포인트 4만8000원어치를 국제구호단체에 넘긴 것이다. 그는 “그동안 카드 포인트는 쓸 데가 마땅치 않아 사용을 미루다 사용 기한을 놓치기 일쑤였다”며 “좋은 일에 썼다고 생각하니 뿌듯해 앞으로는 연말마다 포인트를 기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제 기부도 긁는 시대다. 신용카드로 기부금을 결제하는 ‘직접 결제 기부’와 그동안 쌓은 포인트를 자선단체에 전달하는 ‘포인트 기부’에 동참하는 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23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2005년 이후 7개 전업카드사(신한·삼성·현대·KB국민·롯데·하나SK·비씨카드)를 통해 모인 기부 누적액은 이달 18일까지 70억5720만원에 달한다. 대표적 연말 기부 창구인 구세군 자선냄비의 한 해 모금액이 50억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무시하지 못할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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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 기부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포인트 기부’라는 부담 없는 방식이 있어서다. 업계는 누적 기부액의 75% 안팎이 포인트 이전을 통한 기부라고 추정하고 있다. 박씨처럼 ‘뾰족이 쓸 곳 없는 카드 포인트로 좋은 일이라도 하자’는 소비자가 적지 않은 것이다. 김해철 여신금융협회 조사역은 “대부분 카드 사용으로 적립된 포인트는 ‘덤’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기부하는 데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며 “포인트로 기부해도 구호단체에는 모두 현금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가장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신용카드를 활용한 기부에 특히 적극적인 이들은 3040세대 남성이다. 신한카드가 2010년 1월부터 올 9월까지 카드를 활용해 기부한 고객 2만7000명을 분석한 결과다. 3년 기부액 10억4660만원 중 40대의 기부 누적액(4억434만원·38.6%)이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많았고, 30대(3억6188만원·34.6%)가 뒤를 이었다. 남성이 기부한 금액이 6억3892만원(61%)으로 여성보다 훨씬 많았다. 김병철 신한카드 부부장은 “포인트 사용처를 꼼꼼하게 챙기는 여성 소비자들은 이를 자신을 위해 쓰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며 “남성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포인트 활용 정보가 적어 나중에 ‘기부하자’는 결정을 많이 내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예외는 있다. 올 한 해 신한카드 ‘기부왕’은 8회에 걸쳐 총 588만원을 기부한 여성이었다.

 앞으로도 ‘카드 기부’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부터 ‘구세군 자선냄비’도 신용카드 결제를 받기 시작하는 등 구호 단체도 신용카드를 통한 모금을 적극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이후 20일까지 구세군 자선냄비에 모인 돈(33억9500만원) 중 약 1%가 건당 2000원씩 카드로 결제한 기부였다. 구세군 자선냄비본부 홍봉식 홍보부장은 “올해 처음 도입된 카드 결제 기부가 예상 외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며 “내년에 1회 기부액수를 늘리고 전국에 시스템을 보급하면 카드 기부가 전체 기부액의 10%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신용카드사들은 구세군 자선냄비 기부액에 대해선 수수료(1.0~1.5%)를 받지 않는다.

 채규만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기부를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는 사람, 적은 돈이라 선뜻 내밀기 쑥스러운 사람이 많은데 신용카드를 통해 다양한 기부 문화가 생겨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며 “포인트 이전이나 구세군 자선냄비 카드 결제 등은 사회 전반에 소액 기부가 확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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