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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산 녹차 스타벅스 타고 세계 주요 도시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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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호 22면

스타벅스가 한국산 녹차에 반했나. 미국의 세계 최대 커피점 체인이 새해부터 지구촌 주요 도시에서 제주 녹차음료를 팔기로 했다. 미 인기 여배우 니콜 키드먼은 최근 박찬욱 감독 할리우드 영화 ‘스토커’에 출연한 기념으로 설록차를 선물 받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위기의 녹차, 부활 조짐

한동안 가라앉았던 한국산 녹차 붐이 국내외에서 다시 일 전망이다. ‘녹차(綠茶, Green Tea)’는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인의 간판 기호음료이자 한국 문화를 담은 수출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2007년 3500t 생산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과열 재배 경쟁과 중국산 녹차의 유입으로 토종 이미지에 금이 갔다. 전 세계적 커피 열풍이 한국에도 불어닥치면서 국내 녹차시장은 더욱 휘청거렸다. 하지만 올 들어 수요와 생산이 늘어나는 등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 관련 업계도 ▶유기농 ▶프리미엄 ▶다각화를 내세워 붐 조성에 힘쓰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내년 녹차 수출 두 배로
이진호 장원 대표가 최근 홍콩의 스타벅스 아시아 총괄본부에서 현지 총괄 임원과 녹차 원료 공급 협약서에 서명했다. 한국산 녹차가 스타벅스 점포를 타고 세계로 뻗어나가게 된 것이다. 이 대표는 “내년 한 해 제주산 녹차 가루 28t이 지구촌 주요 도시에 퍼질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벅스가 정밀 품질측정을 한 결과 혁신 유기농 재배와 과학적 관리, 녹차의 수색(물색깔)·향기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자회사인 장원은 차 브랜드 ‘설록’의 재배지인 제주 다원을 관리한다. 아울러 녹차 신상품을 연구 기획하고 여기에 원료를 공급한다. 장원의 유주 설록차연구소장은 “녹차 시장이 지난해 바닥을 치고 올 들어 활기를 띠고 있다”고 전했다. 장원은 올해 캐나다·독일·네덜란드 등지에 녹차를 40t 가까이 수출했다. 내년 수출 물량은 두 배가 넘는 80여t에 이를 것으로 기대한다.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의 차(茶) 전시관 ‘오설록티 뮤지엄’에서 직원이 차나무 잎을 볶고 있다. 작은 사진은 전시관 외부 모습. [아모레퍼시픽 제공]

한국산 녹차는 웰빙 바람이 분 2000년대 들어 국내외에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2002년 ‘세계 10대 건강식품’ 중 하나로 녹차를 꼽기도 했다. 경남 하동과 전남 보성, 제주 등 녹차 산지는 맑은 공기와 물, 수려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그래서 한국산 녹차는 청정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국내 녹차산업의 전성기는 2000년대 중반. 중소 농가는 물론 대기업까지 녹차 재배·유통 사업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1000t이던 녹차 생산량은 2007년 3500t까지 늘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등을 계기로 생산량은 2010년 2500t, 지난해엔 2000t까지 줄었다. 외국산 원두커피와 중국산 녹차의 공세도 한몫했다. 제주녹차사업단장인 송관정 제주대 생물산업학부 교수는 “품질이 떨어지는 저가 녹차의 마구잡이 유통으로 녹차 특유의 청정 이미지가 퇴색할 위기”라고 말했다. 대형마트 등의 할인경쟁도 품질보다 가격 경쟁에 불을 지폈다. 이마트 등의 녹차 매출은 2008년부터 연평균 20%가량 줄어든 대신 커피 매출은 20%가량의 신장률을 보였다. 중소 농가들도 잇따라 녹차 재배를 포기했다. 국내 최대 녹차 단지인 전남 보성군에 따르면 2010년 1097㏊였던 녹차밭 면적은 지난해 1064㏊로 줄었다. 5년간 축구장 150개 면적의 녹차 밭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올해 녹차 생산량이 2400t으로 전년 대비 20%의 신장률을 보인 것이 주목된다. 장원의 경우 지난해 515t이던 생산량이 올해 650t으로 30% 가깝게 늘었다. 국내 녹차 업계는 아모레퍼시픽(장원)과 동서식품·동원F&B·롯데칠성 대기업 4사와 녹차원·담터·다농원 등 130여 개 회사가 이끈다. 특히 스타벅스와 대규모 가루 녹차 공급 계약을 한 장원 등 제주산 녹차 회사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업계는 우선 녹차의 청정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유기농 재배에 힘쓰고 있다. 송 교수는 “차 나무는 많은 비료를 필요로 하는 다비작물이고 병충해를 입을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장원 등은 제주에서 숱한 시행착오 끝에 바닷새의 배설물인 구아노와 유채·콩·피마자 종자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를 활용해 차나무에 적합한 유기질 비료를 개발했다. 이런 노력으로 제주산 녹차는 국제유기농업운동연맹과 미 농무부, 유럽 공인기관의 인증을 잇따라 획득했다.

녹차를 한국의 명품 문화유산으로
프리미엄 이미지의 확산도 녹차 부활에 한몫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도심 속 프리미엄 차 문화 공간인 ‘오설록 티하우스’ 보급에 나섰다. 서울 명동·대학로·인사동 세 곳에 이어 올 들어 압구정점과 수표동점을 열었다. 티하우스에서는 티 소믈리에가 차에 대해 설명해 주고, 차 음료뿐 아니라 차 원료의 베이커리·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도록 했다.

젊은층을 겨냥한 제품 다양화도 눈에 띈다. 고급 녹차인 ‘마스터스 티’와 여러 찻잎을 섞는 ‘블렌딩 티’가 전형적인 사례다. ‘일로향’ ‘세작’ ‘삼다연’과 ‘웨딩 그린티’ ‘해피 그린티’ 등이다. 젊은층이 많이 찾는 오설록 블렌딩 티는 단일 품목으로 연 매출 100억원 달성을 눈앞에 뒀다. 롯데칠성음료는 20·30대 대학생과 직장인 상대로 녹차와 탄산을 결합한 ‘티 그린스파클링’을 선보였다. 녹차 음료에 탄산을 가미해 깔끔함과 청량감을 느끼게 했다.

이런 시도는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아모레퍼시픽의 오설록 마스터스 티 ‘일로향’은 올해까지 ‘북미 차 챔피언십(North American Tea Championship)’에서 3년 연속 ‘덖음차’ 부문 1위에 올랐다. 덖음차란 찻잎을 솥에 살짝 볶은 것이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은 “차 문화 창조자라는 사명감을 지니고 녹차를 한국의 명품 문화유산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미 할리우드에서도 녹차가 최근 화제에 올랐다. 내년 초 해외 상영을 목표로 ‘스토커’라는 영화를 촬영한 박찬욱 감독은 현지 출연 배우들에게 한국의 향취를 알리려고 ‘오설록 제주난꽃향 그린티’를 선물했다. 이 제품은 1년에 열흘만 꽃 피우는 제주 한란의 향을 낸다. 선물을 받은 주연 니콜 키드먼이 “여태껏 마셔본 차 중에 가장 맛있다”고 감탄하더라고 박 감독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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