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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너무 늘어 걱정이던 시골마을, 대박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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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전국 1500개 ‘색깔 있는 마을’ 중 모범으로 꼽히는 경기도 양평 모꼬지 마을의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 왼쪽부터 임정화 사무장, 최학배 이장, 홍승필 양평군청 농촌관광팀 주무관, 오우식 박사, 주민 권선혁씨, 김기업 한국농어촌공사 차장. [강정현 기자]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1970년대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던 ‘새마을 노래’의 후렴구다.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 정신은 농촌의 전근대적 생활 환경을 현대적으로 변화시킨 원동력이었다.

 현재 전국 농촌 곳곳에선 ‘제2의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다. 농촌 주민들이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참여하는 ‘색깔 있는 마을(색깔마을) 만들기’다. 새마을운동이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를 노래하며 농촌의 하드웨어를 바꾸는 운동이었다면 색깔마을 만들기는 소프트웨어의 혁신을 추구한다. 갈수록 활력을 잃어 가는 농촌에서 마을의 ‘색깔’로 내세울 만한 개성 있는 주제를 발굴해 변화의 새바람을 일으키는 게 목표다. 새마을운동이 관 주도의 ‘톱다운(하향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면 색깔마을 만들기는 주민들이 스스로 의견을 내고 힘을 모아 가는 ‘바텀업(상향식)’이란 것도 차이점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2015년까지 전국에 5000개의 색깔마을을 육성·발전시켜 나간다는 방침이다. 현재까지 전북 임실의 치즈 마을, 강원도 평창의 소도둑놈 마을, 경기도 여주의 해바라기 마을 등 1500곳이 색깔마을로 선정됐다. 이 중 모범 사례로 꼽히는 경기도 양평군 ‘모꼬지 마을’을 찾아갔다.

주민총회에서 마을 비전 합의

경기도 양평 모꼬지 마을을 찾은 한 어린이가 딸기 따기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 모꼬지 마을]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조현리는 마을 입구에서부터 평범한 농촌과는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비교적 최근에 지은 듯한 현대식 주택들이 좁은 골목길을 따라 경사가 높은 곳까지 들어서 있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라기보다 신도시의 단독주택 단지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보통 시골 마을이라면 젊은이들이 빠져나가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게 문제다. 그러나 조현리는 정반대다. 최근 수년간 인구가 지나치게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 이 마을 사람들의 고민이다. 최학배 이장은 “올 초에도 200여 가구에 달해 너무 많다는 말이 나왔는데 연말까지 60가구가 더 늘었다”며 “새로 이사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어린애들을 키우는 젊은 부부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농촌 지역에 젊은 인구가 이렇게 빠르게 유입되는 곳은 모르긴 해도 전국에서 우리 마을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구 증가의 원인은 과도한 교육열이다. 이 마을에 위치한 조현초등학교가 창의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전인교육을 하는 곳으로 전국에 소문이 났다. 그러자 이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기 위해 도시의 학부모들이 몰려들었다. 한때 학생 수가 100명에 미달해 폐교 위기에 놓였던 조현초는 현재 350명(병설유치원 포함)으로 초과밀 상태다. 조현리 주민 임정화씨는 “교실마다 학생들이 앉을 의자를 넣을 공간도 부족하고 씻고 마실 물이 모자라 수도꼭지를 돌려도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학교 홈페이지에는 학교장이 “학생 정원 초과에 따른 불편이 심각해 더 이상의 전입학이 불가능한 상황”이란 글까지 올렸다.

 자녀 교육을 위해 도시에서 온 귀촌자들은 마을 원주민들과 쉽게 융화되지 못했다. 임씨는 “원주민들은 주로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반면 귀촌자들의 경우 아빠는 도시에서 계속 직장을 다니고 엄마는 집에서 애들을 보는 경우가 많다”고 소개했다. 그러다 보니 원주민들과 귀촌자들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지난 5월 마을 주민들이 이런저런 고민들을 툭 터놓고 대화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농식품부 주관으로 색깔마을로서의 비전과 발전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한 ‘농어촌 현장 포럼’이었다. 주제에 상관없이 마을 주민이면 누구나 참여해 무슨 얘기든지 할 수 있다고 했다. 선진국의 ‘타운 미팅’을 본뜬 주민총회였다. 최 이장이 농식품부에 신청서를 넣어 전국 색깔마을 중 1호로 유치했다.

 회의의 열기와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임씨는 “오후 2시에 회의를 시작해 밤 10시가 넘도록 이어졌다”며 “오래 앉아 있기엔 불편한 환경이었는데 팔순이 넘은 어르신들도 끝까지 자리를 함께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주제에서 벗어나는 얘기를 해도 들어주고 공감하고 박수도 쳐주는 분위기였다”며 “포럼이 끝나자 ‘이런 회의는 처음이었다’ ‘정말 재미있었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현장 포럼엔 외부 전문가들도 참여했다. 서울에서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오우식 박사(경영학)는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진행촉진자)’란 역할을 맡았다. 오 박사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일부러 질문을 던져 자기 의견을 말하게 했다”며 “여러 사람의 다양한 의견을 종합해 다수결이 아닌 합의로 의사결정을 해야 실행 과정에서 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조현리 주민들은 마을의 미래 비전을 ‘아이들이 행복한 마을’로 정하는 데 합의했다. 그리고 원주민들의 오랜 농촌 경험과 귀촌자들의 젊은 에너지를 결합시켜 ‘모꼬지 마을’이란 이름의 색깔마을로 발전시켜 나가는 데 손을 맞잡기로 했다. 모꼬지는 ‘놀이나 잔치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일’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지역 경제에 대한 기여도 커

주민들이 뜻을 모으고 힘을 합치자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특히 이 마을에서 진행하는 농촌체험 프로그램이 눈에 띄게 활성화됐다. 봄에는 딸기농장 체험, 여름에는 물놀이와 송어 잡기, 가을에는 벼·고구마 등 농작물 수확, 겨울에는 김장 체험과 썰매 타기 등이다. 도시민에게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농가에는 부수입을 창출하기 위해 시작한 마을 사업이다.

 최 이장은 “체험 방문객 수가 지난해 7200명에서 올해는 1만2000명으로 60% 이상 늘었다”며 “한 번 오신 분들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며 재방문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어르신들이 후한 인심으로 방문객들을 대하다 보니 1인당 얼마씩 받는 회비로는 거의 수익이 나지 않는다”며 “하지만 지역 농산물 판매와 일자리 창출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점에서 지역 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 마을에서만 50년 넘게 살았다는 주민 권선혁씨는 “예컨대 김장 체험을 하면 당연히 이 마을에서 키운 신선한 배추를 쓰게 된다”며 “저절로 도농 직거래가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더 좋은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도 속출했다. “컴퓨터 게임에 빠진 어린이들이 자연 속에서 뛰놀 수 있게 서바이벌 게임장을 만들자” “마을에서 나는 국산 밀로 화덕 피자 굽기 체험 프로그램을 해보자” 등이었다. 권씨는 “올여름에 농촌 체험형 민박을 해봤더니 반응이 무척 좋았다”며 “펜션의 반값도 되지 않는 숙박비에 식사까지 제공하니 ‘감동이었다’는 소감을 남기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민박집은 주로 할머니들이 혼자 살며 깔끔하게 잘 관리해놓은 곳을 선정했다”며 “다른 일로는 10원짜리 동전 하나 벌기 어려운 분들이 민박으로 부수입을 올리니 무척 좋아하신다”고 전했다.

 체험 프로그램 사무장을 맡고 있는 임씨는 “연날리기와 썰매 타기 등 전통적인 농촌 프로그램만으로는 도시 방문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힘들다”며 “특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계속 개발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양평군청 농촌관광팀의 홍승필 주무관은 “조현리에서 가장 먼저 현장 포럼을 진행한 것은 이 마을 특유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며 “다른 마을에서 보기 힘든 우수한 인적 자원을 갖추고 있어 주민 융화만 이뤄지면 시너지가 더욱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그러기 위해선 주민들이 긍정적 마인드를 갖고 마을 리더를 믿고 따르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주무관은 색깔마을 만들기의 ‘현장 활동가’로서 주민들과 호흡하며 색깔마을을 다각도로 지원하고 마을의 발전 방안을 함께 찾아가는 역할을 맡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2015년까지 지방자치단체 담당 공무원을 중심으로 2000명의 현장 활동가를 양성할 계획이다.

 하지만 외부 방문객이 많아졌다고 저절로 색깔마을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임씨는 “우리 마을 고유의 색깔이 뭐냐고 물어보면 아직은 확실히 대답하기가 어렵다”며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오 박사는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노력해 작은 성공의 경험을 축적해 가는 게 중요하다”며 “현장 포럼도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기업 한국농어촌공사 차장은 “색깔마을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 마을은 도농교류형이라고 할 수 있다”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민들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방문객들이 행복해도 주민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주민들이 한데 모여 잔치도 하고 취미 생활도 같이 하면서 행복하고 화합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면 방문객들의 발길도 절로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일보·농림수산식품부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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