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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을 달리는 출판계의 혼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소련작가「파스테르나크」작품 「의사 지바고」가 우리나라의 출판시장에서「덤핑」이 되었던 적이 있다. 유명·무명의 출판사들이 경합을 벌여 한꺼번에 다섯 가지의 「지바고」가 쏟아져 나왔었다.
놀라운 사실은 30여만 단어의 그 원서가 무려 보름만에 번역. 출판까지 된 일이었다. 출판사는 그 원본을 발기발기 찢어 10여명의 「번역사」에게 의뢰해서 벼락판을 찍어낸 것이었다. 작중 인물의 이름이 앞 뒷장에서 서로 다르게 발음된「난센스」도 벌어졌다. 번역자가 서로 다르니 그 외 국인명의 발음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후 9년이 지난 오늘 우리나라의 출판계는 여전히 그런 악순환의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도 이런 일은 태연히 벌어진다.
오히려 그때와는 상황이 더 악화 된 예도 없지 않다. 일본과의 국교가 터진 이후 어떤 해이된 현상까지 눈에 뛴다. 일본의 어느 일간지에서 현상 모집했던 작품이 그 연재도 끝나기 전에 우리나라에는 벌써 번역만이 되어 나왔다. 한군데도 아닌 세군데에서 물론 해적판이다. 일부 출판사에선 중역 재중역을 아무렇지도 않은 일처럼 해낸다.
「한국문인협회」가 지난1일「국제 저작권 협회 가맹에 대한 전의서」를 내놓은 것도 이런 출판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반발이었다. 이 건의서는 세 가지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①무질서한 번역출판 ②번역문학의 질적 저하 ③국내창작물출판의 위협 등. 『이와 같은 출판계의 혼란장을 더 이상 좌시 할 수 없다』고 문인들은 상기했다.
그러나 이 반응은 여러 가지로 나타났다. 오히려 냉담한 편이 우세한 실정이다. 출판계는 한결같이 그런 반응을 보였다.
「국가정책」이 선행되어야하는 이 문제에 정부당국 또한 난처한 태도를 보이고있다.
우리나라의 출판 풍토는 아직도 황무지나 다름이 없다는 현실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65년의 경우, 연간 국내의 총출판수는 9천2백49종(출판집계)이었다. 이중 만화류(6천62종)와 학습참고서(9백72종)를 제하면 겨우 2천2백15종. 그나마도 교과서, 교육서적, 아동물, 법률, 정치서 등을 밀어놓으면 대부분이 번역서들이다. 65년의 예로 그것은 총판의 약30%를 차지한다. 원서들은 미·일·영·불 등 「국제 저작권 협회」가입국들의 것이 대부분이다.
「베른조약」(전문30조)이나「국제저작권 조약」(전문21조와 부칙선언)은 그 조약의 범위를 문학뿐 아니라 『기타의 문서, 강연·연실·설교 및 기타의 동질의 저작물, 연극각본·악보인 연극각본, 연출이 문서 기타의 방법으로 정해진 무보, 무언극, 가사가 있는 악보 또는 없는 악보, 소묘· 회화·건축·조각·동판·석판의 저작물, 도해 및 지도·지리학·지형학·건축학 또는 과학에 관한 도면, 약도 및 모형』(베튼조약 제2조)등 일체 제작물에 미치고있다. 이런 행위는 가맹국의 저작물인 경우에 깍듯이 번역료나 혹은 인세를 물어야한다. 그 한 계는 저작자의 생존기간을 포함해 적어도 사후25년 이상까지. 우리나라의 저작권법은 사후30년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러니 가령 「사르트르」나「카뮈」의 출판물은 엄연히 예외는 아니다. 방송국의「톰륜쇼」도, 책의 표지에 묘사한 누구의 명화도 다 인세에 저촉된다.
이런 지경에 이르면 국내문화는 거의 동결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비관론도 나온다. 왜냐하면 국가는 적어도 연간 수십만 「달러」의 외화를 감당해야하기 때문이다. 설령 국가의 의지가 그것을 허용한다해도 군소령세 출판사는 도선되고 말 것이다. 「문협」의 건의서가 지적한 「국내물 출판의 위축」은 오히려 더 악화되면 악화되었지 개선될 분위기는 흐려질 것이다. 더구나 국내 저작물의 해외진출로 외화의 획득을 기대하기란 사실 어려운 일이다. 저작권투수의 균형이 국제적으로 이루어질 시기는 요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출판시장의 실정은 「국제저작권조약」을 반드시 출판의「국제율」로 치고있지는 않다.「유엔」가입국 1백17개국 중 「국제저작권」에 가입한 나라는 불과 51개국이다. 그들은 영어권의 국가들이며, 그렇지 않은 나라는 독·이·일 정도.
우리의 실정으로 또 하나 미비한 것이 있다.「베른」조약의 경신인 저작권과 출판권의 동등성이 우리나라에선 법으로 제정되어있지 않다. 출판권법 없고 다만 저작권법 속에서 몇 구절 그것이 지적되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의 현실로는「국제저작권조약」을 하나의「필요악」으로 인정 할 수밖에 없다. 출판정화는 결국 출판인의 양식안을 경악시켜 주는 길뿐이다.「문협」의 건의서도 그것을 위한 한줌 소금의 구실에 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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