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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권자금 조기사용 둘러싼 속 한일회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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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공식교섭 1막 1장>
이 공사=협의하러 왔다
서산=협의 응할 수 없다
이 공사=설명만 들으라
서산=설명만은 듣겠다
…설 명…
이 공사=감상이 어떤가
서산국장=입맛이 쓰다
청구권액수책정으로 14년의 곡절을 겪었던 한·일 협상은, 협상이 성립된 이제 14년 분할제공을 원칙으로 했던 청구권자금을 처음 6년 동안으로 앞당겨 한국이 사용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속 한·일 협상」에 들어선 느낌이다.
지난 1월 19일 하오3시 이규성 주일공사가 일본 외무성으로 서산 경제협력국장을 찾아 올해와 그리고 명년부터 시작되는 제2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기간의 6년 동안에 청구권 및 경제협력자금 5억불(정부「베이스」)을 집중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일본이 배려해 줄 것을 제의한 것이 통상외교「채널」을 통한 교섭의 첫 걸음―.
그 당시의 이·서산 절충의 내용을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이 공사 『청구권자금 조기사용에 관하여 협의하러 왔다』
서산국장 『협의에 응할 수 없다』
이 공사 『그러면 나의 설명을 들을 수 있겠는가』
서산국장 『설명이라면 듣겠다』
…설명…
이 공사 『설명을 듣고 감상이 어떤가』
서산국장 『입맛이 쓰다』
○…외교 「채널」을 통한 교섭에 앞선 「정치 절충」은 이동원 외무부장관이 제20차 「유엔」총회에 참석했다가 귀로 지난해 12월 중순 동경에 귀착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2월 13일 이·좌등 회담에서 좌등 수상은 일본의 「국회사정」을 들어 한·일조약· 협정비준서 교환날짜를 기왕 확정되었던 12월 21일에서 12월 18일로 앞당겨 다시 잡을 것을 간청했다.
이 외무의 동경기착에 앞서 이곳에 파견되어왔던 최광수 외무부 동북아 과장은 「청구권조기사용」을 타진하라는 정부훈령을 휴대했었다.
이 외무는 좌등 수상의 간청을 본국정부에 전하여 뜻을 살리도록 힘쓰겠다고 약속하는 한편 한국의 「경제사정」을 들어 청구권자금을 제2차5개년 계획기간에 집중적으로 투하할 수 있도록 배려 해줄 것을 요청했다.
좌등 수상의 대답을 정확히 옮길 수 없지만 『뜻을 살리도록 사무당국으로 하여금 검토케 하겠다』는 투의 꽤 긍정적인 대답이었던 것. 그러니까 일본외무성이 청구권 조기사용합의를 공식 부인했다는 보도에 대하여(사실은 부인이 아니고 벽두에 인용한 이·서산 문답처럼 일본측의 반응이 극히 냉담했다는 것) 장기형 부총리는 『일본정부가 조기사용문제를 적어도 거절은 안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청구권자금 조기사용을 둘러싼 교섭의 전망은 당장엔 밝지 못하다는 것이 실정인 것 같은데 그와 같은 전망을 세울 수 있는 근거로 일본의 「국회사정」을 들 수 있다.
일본의 제51회 통상국회는 지난27일 재개되어 백 50일의 회기로 5월 l8일까지 계속된다. 이 회기동안에 좌등 내각은 어쩌면 좌등 정권의 운명을 좌우할는지도 모르는 「계속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4조3천백42억 7천만 원 규모의 이른바 대형·적극예산을 성립시켜야한다. 그리고 이 예산안의 성립을 위해 이번 회기 안에는 예산안과 관련된 법안만을 제안하고 야당을 자극하는 안건발의는 애써 피하겠다는 태세이다.
올해부터 조기 사용을 실현시키자면 이미 초년도 5천만 불 상당이 계상된 예산안이 제안된 뒤이므로 추경예산안을 다시 내놓아야 한다. 조기사용을 한국의 야당이 반대하고있는 아마도 똑같은 이유로 일본의 야당도 반대하고 나설 것이므로 우선 불경기 타개예산을 성립시켜야 할 좌등 정권으로서는 이번 회기 안에 조기사용을 반영한 추경예산안을 내놓기 극히 어려운 형편인 것 같으며 제안하더라도 4월 이후 또는 회기가 끝나는 5월 18일 이후 임시국회를 소집한 뒤가 될 것이다. 그래서 「당장」엔 밝지 못하다는 판단이 나오게 된다.
또 한가지 한국과는 달리 「관료왕국」으로 일컬어지는 일본의 경우 정치가의 정치적 배려가 사무당국의 검토에 반드시는 반영되지 않는다는 측면을 들 수 있다. 일본의 외무성, 대장성의 반응을 종합해 보면 ①「각 년의 제공한도액은 양 체결국정부의 합의에 의하여 증액될 수 있다」(협정 제1조)는 예외규정을 제l차년도 실시계획이 성립되기도 전에 적용시킬 수 없다. ②우선 제1차년도 실시계획을 실천에 옮겨보고 그때 가서 사정을 보아 검토해보자,③계약은 「증액」된 것으로 하되 실제지출은 10년 분할의 원칙대로 한다는 투다.
2일 방한한 하전공사(외무성 관방심의관) 도 조기사용에 관한 한국 측의 설명을 다시 듣는다는 「재량」밖에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정치절충도 곁들인 끈덕진 속 한·일 협상이 예상되고있다.
【동경=강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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