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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 추락하는 LG아트센터 … 날개는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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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현대적으로 비튼 ‘리어외전’. 28일까지 공연된다. [사진 LG아트센터]

27%-. 12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의 객석 점유율이다. 연말은 공연계 최고 성수기다. 다들 표를 못 구해 안달이다. “어지간한 공연이라도 연말에만 올리면 매진된다”는 게 이 동네 정설이다. 이런 호시절에 객석 3분의1도 채우지 못 한다는 건 그야말로 굴욕이다. 점유율 27%는 LG아트센터 개관 12년 역사상 최악의 흥행 성적이다. 16일 공연엔 고작 160여 명의 관객만 들어왔다.

 취임 2년째를 맞은 윤여순 대표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그의 야심 찬 기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LG아트센터는 현재 연극 ‘리어외전’(고선웅 연출)을 올리고 있다. “연말 극장가가 온통 뮤지컬 일색이다. 이럴 때 우린 차별화를 꾀하겠다”며 윤대표가 연극 공연을 고집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스타 출연자가 없고, 다소 낯선 작품 스타일 등이 실패 원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티켓 값이 비쌌다. LG아트센터가 고급을 지향한다 해도 연극 공연 7만원은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리어외전’만이 아니다. 올해 전반적인 성적이 안 좋았다. 2012년 연간 점유율이 60%를 간신히 웃돌고 있다. 이 역시 역대 최저(개관 연도 제외)다. 2000년 개관한 LG아트센터는 그동안 연간 점유율이 대부분 80% 안팎이었 다. 2005년엔 90%를 넘기기도 했다. 물론 순수예술 공연장으로서 흥행 성적만이 전부는 아닐 게다. 그렇다면 올해 LG아트센터에서 한 작품 중 엄청나게 혁신적인 작품이 있었는가. 글쎄, 잘 모르겠다.

 2000년대 들어 대한민국 공연계를 선도해 온 건 사실 서울 예술의전당도, 세종문화회관도, 국립극장도 아니었다. 민간 공연장 LG아트센터였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 장기 공연을 성사시켜 한국 뮤지컬 르네상스의 서막을 열었다.

 2004년 ‘단테의 신곡 3부작’은 3만2000리터의 물을 퍼붓는, 파격적인 무대 연출로 관객의 얼을 쏙 빼놓았다. 매튜 본과 피나 바우쉬가 한국과 연을 맺기 시작한 것이나, 러시아 거장 레프 도진의 7시간30분짜리 연극을 볼 수 있었던 것도 LG아트센터였기에 가능했다.

 관객 평점에서도, 전문 경영 평가에서도 LG아트센터는 늘 1등이었다. LG아트센터에서 공연을 본다는 건, 팬으로선 하나의 자랑이요 뿌듯함이었다. 그랬던 LG아트센터가 언제부터 무너졌을까.

 그 단초는 지난 5월 이자람의 ‘억척가’ 공연 중 발생했다. 공연은 지정석 없이 선착순 입장이었고, 대부분 관객은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했다. 막상 입장하고 보니, 가장 좋은 중앙 좌석 50석엔 앉을 수가 없었다. 그 자리는 공연 직전 우르르 몰려 온 중·장년 관객의 몫이었다.

 이들은 LG그룹 전·현직 임원이었다. 극장으로선 어른을 위한 일종의 배려였겠지만, 1시간 넘게 기다린 보통 관객으로선 불쾌한 일이었고, 꽤 오랫동안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초대권을 없애고, 회장님도 표를 사야 볼 수 있는 극장이라는, LG아트센터만의 ‘소신경영’이 ‘눈치경영’으로 쇠락하는 순간이었다.

 앞으론 나아질까. 그럴 기미는 없어 보인다. LG아트센터가 공개한 내년 프로그램을 보면 대부분 재탕이지, 특별히 이슈가 될 만한 공연은 눈에 띄지 않는다. 기획 공연수도 역대로 가장 적은 15개뿐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인가. 명성을 쌓기는 힘들어도 허물어지는 건 쉬운 게 세상 이치인가 보다. 어쩌면 LG그룹으로선 10년째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프로야구 LG트윈스와 함께 또 하나의 난제를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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