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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눈을 뜨는 구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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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늘은 구정 초하루. 봄이 눈을 뜨는 날이다. 바람은 아직도 매서우나 항용 우리는 이맘 때면 변화하는 계절의 촉감을 즐긴다. 양춘에의 기대도 한껏 부풀거니와, 전통적으로 농사의 나라인 이 땅 들판에는 멀지않아 농경의 시동을 거는 함성이 울려 퍼지리라.
자고로 우리 나라에서는 설날인 이날을 두고 가지가지의 풍속이 자리잡혀 왔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럼 깨기를 하고 귀밝기 술을 마시며 차례를 드려 조상을 숭상하는 미풍을 길렀다. 그리고 부모나 일가 친척을 비롯한 둘레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고 나서 사내아이는 팽이 돌리기, 연날리기에 분주하고 여자아이들은 널뛰기에 정신을 판다. 색동저고리가 널판의 반동을 타고 하늘높이 치솟는 듯한 풍경, 윷놀이에 골몰하는 어른들의 모습 이 모든 것들이 이날의 빼어놓을 수 없는 풍경으로 된다. 뿐만 아니다. 이 날은 어른들깨서 소망을 성취하라는 덕담을 베푸는 날인 것이다. 말하자면 한해의 획이 실감나게 그어질뿐더러 알뜰한 희망이 파종되는 것이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 이날은 심한 푸대접을 받는 것이 되었다. 거듭 말할 것도 없이 마법을 양력으로 통일하여야 하며 생활의 합리화를 위해 이중 과세의 폐단을 제거하여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음력으로 따져 초하룻날인 이날은 차차 경원되어야 했던 것이다. 물론 그 이유에는 나무랄 데가 없으며 이날을 굳이 설날로 고집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오랜 시간의 축적 속에서 어느덧 우리 피부와 생활 속에 파고든 이날의 풍속과 이날을 즐기는 흥겨움을 전혀 인위적으로 버려야한다면 그것은 가혹하다. 또한 비현실적이다. 농사가 시작되려 하고 계절이 전환점을 찍으며 슬하고 아름다운 풍습이 살아 내려온 이날의 의미를 전면적으로 거행한다면 그것은 억지이다. 이 날의 즐거움, 이 날의 희망은 어떤 형태로든지 살아남게 하자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며 근자 식자들의 공통된 견해로 되어 있는 줄 안다.
명칭은 무어라고 달아도 좋을 것이다. 이 날의 즐거움을 빼앗게 하지 않으면 된다. 일제시대에 이 날을 즐기느라고 양력을 「위설」이라 하고 음력을 「조선설」이라고 하였던 웃지 못할 고사를 일단 덮어둔다 하여도 우리는 「크리스머스」 설정의 유래를 인용, 이 주장의 합리화를 시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원래 「크리스머스」는 고대 「로마」에 있어서 전래적인 태양신을 위한 축제가 하도 뿌리뽑히지 않으므로 새롭게 자리잡은 기독교가 구 종교가 하는 「동지제」 (12월23일)의 날짜와 나란히 「크리스머스」 축제일을 정하고 그것을 동화시켜 버렸다는 설도 있거니와, 한편 마법 자체가 역사적으로 보면 극히 상대적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또한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말들을 구차하게 인용 안한다 하더라도 이날의 즐거움이나 기쁨을 빼앗지 말자는데는 아무도 이론이 있을 수 없지 않겠는가. 있는 그대로의 생활, 윤기 그리고 봄이 눈을 뜨는 이 희망의 계절의 촉감을 만끽하도록 이 날을 양성화 할 순 없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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