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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소비, 너만 믿는다'

중앙일보

입력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운 판에 미국 테러 사태의 영향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경기 회복이 더욱 늦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올 들어 아홉번째의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가 3, 4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예고되는 가운데 미국은 물론 주요 국가들은 소비가 살아나기만을 바라보는 판이다.

미국의 소비 위축은 당장 한국의 수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소비는 여름휴가철에 이어 핼러윈데이(10월 31일).추수감사절(11월 22일).크리스마스(12월 25일)에 집중된다.

그런데 올해는 테러사태 이후 냉랭해진 소비심리 때문에 대목을 기대하기 어려워졌고, 두세달 전부터 계약하는 한국의 수출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 소비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 커져=난해 국내 경제성장률이 8.8%를 기록할 때만 해도 민간 소비가 성장에 미치는 기여율은 40%를 약간 웃돌았다.

견실한 수출과 설비투자의 기여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기 상황이 급격하게 나빠진 올 2분기에는 수출의 기여율이 뚝 떨어졌고, 특히 설비투자는 기여는커녕 오히려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쪽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민간 소비의 기여율은 50%를 넘어섰다.

◇ 미국 소비 안 살아나면 한국 수출 먹구름=출이 올 들어 일곱달째 1년 전보다 감소했다. 산업자원부 김칠두 무역투자실장은 "미국 테러 여파로 크리스마스 특수 등에 차질이 생겨 당초 4분기로 예상했던 수출회복 시점이 내년으로 늦어질 것 같다" 고 말했다.

◇ 세계가 미국 소비를 쳐다본다=테러사태 이후 소비 지표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미국 경제가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는 소비자들이 지갑을 얼마나 여느냐에 달린 것으로 분석되는 판이다.

하지만 최근 나온 소비 지표는 어둡다. 지난달 말 발표된 9월 소비자신뢰지수는 97.6으로 1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낮아졌다.

미국 소매.무역협회는 추수감사절.성탄절 대목의 소매 판매가 지난해에 비해 2.5~3% 증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난해 증가율 5.3%의 절반 수준이다. 협회는 "현 상태대로 소비가 줄어들면 연말 대목은 5년 만에 가장 낮은 신장률을 기록할 것" 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1일 나온 8월 소비지출.가처분소득은 7월보다 높아졌다. 감세(減稅)와 세금 환급 덕분에 소비지출은 0.2%,가처분소득은 1.9% 증가했다.

그러나 조사 시점이 테러의 영향을 반영하지 못해 지표의 신뢰도가 약하다. 따라서 감세로 소비에 불씨를 지피려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효과를 거둘지는 더 두고봐야 한다.

소비가 줄어들자 제조업 경기도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전국구매자관리협회(NAPM)가 3일 발표한 제조업 지수는 47로 14개월 연속 감소했다. 8월 내구재 주문도 7월에 비해 0.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가전 등 내구재 주문은 6월부터 석달째 하락세다.

◇ 추석 경기 예년만 못해=롯데.현대.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의 추석 매출(9월 21~30일)은 지난해보다 15.2~19.2% 늘었다. 특히 백화점 상품권은 지난해보다 두배 넘게 팔렸다.

하지만 일반 상품의 매출 신장률은 지난해보다 낮아졌다. 지난해 42%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했던 롯데의 올해 신장률은 19.2%로 집계됐다. 매출 신장세는 이어졌지만 증가폭은 줄어든 것이다.

할인점도 추석 매출이 10% 정도 늘었지만, 이는 할인점 업계 연평균 신장률 수준에 불과하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추석 때 40% 신장한 신세계 이마트의 올 추석 매출은 10.1%로 집계됐다. 더구나 고객을 할인점과 백화점에 빼앗긴 재래시장은 추석 대목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상인들의 반응이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여성의류 판매점을 운영하는 조윤보(60)씨는 "지방 상인은 물론 휴일마다 찾아오던 조선족의 발길도 올 추석에는 뜸했다" 고 말했다.

남대문시장주식회사 곽명용 과장은 "할인점.인터넷 등 새로운 유통업체와 제도가 속속 등장하면서 몇년째 재래시장 경기가 내리막길" 이라고 덧붙였다.

◇ 내수진작 방안 찾느라 고심하는 한국 정부=재정지출을 늘리는 것 외에 뾰족한 방안을 찾지 못한 상태다. 금리를 더 내릴 수도 있지만 이자소득으로 소비하는 경우마저 줄이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어 신중한 입장이다.

세금을 덜 거둬 가정이나 기업에서 더 쓰도록 유도하는 방법도 있지만 세법을 고쳐야 하므로 내년부터 가능하고 효과도 늦게 나타난다.

내년부터 낮추기로 한 소득세율을 앞당겨 적용하거나 세율 인하폭을 높이는 방법도 있지만 국회에서 결정할 문제다.

정부는 미국의 테러응징 작전이 중동전으로 번지진 않을 것으로 보고 심리적 불안을 진정시키는 쪽으로 접근하고 있다.

해외여행과 골프 수요를 국내로 돌리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패션.디자인 등 직업학교와 예능학교, 어학연수원 시장을 개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해외 유학과 연수를 위해 빠져나가는 자금을 붙들어두기 위함이다.

재정경제부는 외제차와 수입품 이용에 대한 비난과 소비 양극화 현상에 대한 지적도 소비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소비가 상대방에게는 소득' 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

정철근.김준현.홍수현 기자 jcomn@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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