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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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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예전 내 책상앞에는 날마다 한 장씩 떼어버리는 달력이 있었다. 얇은 종이장이라 금요일이 되면 바로 밑에서 기다리고있는 파란 토요일이 비친다. 그러면 나는 금요일을 미리 뜯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가되면 허전함을 느꼈다. 그러나 얼마 안있어 희망에 찬 토요일은 다시 다가오곤 했다.
토요일이 없었던들 나는 상해에서 4년간이나 기숙사생활을 못하였을 것이다. 닷새동안 수도승같이 갇혀있다가 토요일오후가 되면 풀어준 말같이 시내로 달아났다. 음식점으로, 영화관으로, 「카바레」로. 그때 내가 좋아하던 배우는 「그레타·가르보」와 「빌마·뱅키」였다. 어떤 토요일밤이면 황포탄공원에 갔었다. 선창마다 불을 밝히고 입항하는 배들은 문명을 싣고오는 귀한 사절과도 같았다.
나는 해관시계가 자정을 알려도 「벤치」에서 일어나려 들지 않았다. 지친 몸이 「캠퍼스」에 돌아갈 때면 나는 늘 허전함을 느꼈다. 그후 나는 「데이트」 한번 아니하면서도 토요일을 기다리는 버릇을 못 버리게 되었다.
요사이는 토요일 오후를 어떻게 즐기냐고? 서영이와 같이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좋은 영화가 있으면 구경을 가기도하고 나 혼자 비원을 산책하기도 한다.
요즘도 한달에 한장씩 뜯는 달력에 하루하루 날짜를 지우며 토요일을 기다린다. 내 이미 늙었으나, 아낌없이 현재를 재촉하여 토요일을 기다린다. 달력을 한장 뜯을 때마다 늙어지면서도 나는 젊어지는 것을 느낀다. 달력에 그려있는 새로운 그림도 나를 청신하게 한다. 두달이 한장에 실려있는 달력을 나는 가장 싫어한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달력을 한장 찢어버리는것은 「제미니7호」를 발사할때 「카운트·다운」하는 것과도 같이 「스릴」이 있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퇴장하는 신부의 하얀 「드레스」는 금방 퇴색이나 된 듯하다. 사실 그 쑥스러운 상견례를 할때, 그리도 기다렸던 결혼식은 이미 끝난 것이다. 그러나 허무도 잠깐, 그의 앞에는 새로운 희망이 있다. 행복할 가정, 태어날 아기, 시간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에 인색하지 않다. 그러기에 나에게는 언제나 다음 토요일이 있는 것이다.
12월25일 오후가 되면 나는 허전해진다. 초순부터 설레던 가슴이 약간 피로를 느낀다. 그러나 그순간 시간은 벌써 다음 「크티스머스·이브」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종착은 동시에 시발이다. 이해가 가기전에 새해는 오는 것이다. 또 한해의 꽃들이, 또 한해의 보드랍고 윤기있는 나무잎들이, 또 한해의 정다운 찻잔, 웃음, 죄없는 얘기가 우리 앞에 있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겠는가?」 새해가 오면 나는 주말마다 「셸리]와 「쇼팽」을 만나겠다. 「쇼팽」을 모르고 세상을 떠났더라면 어쩔뻔했을까! 새해에 마중나올 화려한 「파라솔」이 안보이더라도 파란 토요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차례차례 서있을 것이다. [서울사대교수·영문학] <컷·성재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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