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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사·에·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서구를 여행할 때 누구나 첫인상에 띄는 것은 경찰이다. 키가 모두 크고 체격이 훌륭하다. 연령도 대개는 지긋한 중년급이라 믿음직스럽다. 얼굴도 예외일 수는 없다. 경찰이라고 하면 험상궂은 모습이 생각나지만, 서구의 경찰들은 모두 배우 같은 미남자들이다.
채용시험을 치를 때 엄격한 면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장도 7척에 미달이면 경관이 될 자격이 없다. 용모에 흉터가 있거나 소위 인상파식으로 되어 있어도 합격 가망이 없다. 지식정도도 「학사경관」까지는 가지 않아도 상당한 교양을 필요로 한다.
그 이유는 경찰의 체모가 나쁘면 대민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서도 되도록이면 대중의 눈에 띄는 곳에 나타나기를 삼가고 있다. 영국경찰엔 『뛰지 말라!』라는 불문율이 있다. 경찰이 뛰면 무슨 사건이 생긴 줄로 알고 시민들이 놀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소걸음이다. 「패트럴카」도 「사이렌」을 울리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것 역시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렌」대신 법적으로 정해진 「도」「미」의 음정으로 경적을 불고 다닌다. 여기 음정가운데 「도」와「미」가 제일 불안감을 적게 주는 모양이다.
한국의 민주경찰은 어떤가? 복장부터가 음산하다. 인상도 딱딱한 편이다. 「패트럴카」가 하나 지나가면 긴장의 폭풍이 분다. 신경질적인 「사이렌」소리가 가슴을 불안케 한다. 파출소 근처에 꽃을 심고 앞에 내건 표어도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어서 오십시오」 등으로 부드러워지긴 했으나, 어디를 가나 파출소가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없다. 서구의 경우엔 파출소를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 사회자체가 아직도 민주화가 되어있지 않은데 경찰만 유독 비판을 받을 수는 없다. 다만 매맞아 죽은걸 변사로 다루었다고 해서, 또는 칼맞고 소명한 학생들을 관할을 미루다 뒤늦게 수사했다거나 하는 요즈음의 사건들은 시민들의 경찰관을 어둡게 해주는 일들이다. 연말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수고가 많겠지만, 한층 더 민주경찰의 책임을 다 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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