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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역사 지켜본 태화강이여, 영원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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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고, 자란 땅은 그 몸을 기를 뿐만 아니라 뜻을 키우고 마음도 살찌운다. 땅이 어질고 기름지면 그 땅에 사는 사람 또한 아름답고 슬기롭다. 그래서 자손만대의 번영을 누리려면 어진 곳을 골라 터를 잡아야 한다.

 울산에는 태화강이 시가지 중심을 가로질러 흐른다. 신라의 국제 교역항으로, 불교문화의 유입 관문으로, 풍부한 물산의 생산지로 한반도의 정신적 물질적 중심이었던 울산의 성장을 태화강은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태화강은 울주군 백운산에서 발원해 47km를 달린다. 강 어귀의 곳곳에는 울산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신적 자양분이 됐던 문화유적이 남아있다. 대표적인 것은 누가 뭐래도 강의 지류인 대곡천의 암각화다. 대곡리 암각화는 세계 어느 암각화에도 찾을 수 없는 산업적, 과학적 기술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어 고대사회 울산인이 얼마나 풍요롭고 슬기로운 생활을 했던가를 반증한다.

울산 도심을 휘감아 도는 태화강. 공업도시로 성장하면서 심각하게 오염됐으나 울산시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우리나라 대표적인 생태하천으로 되살아났다. [사진 울산시]

 그러던 태화강이 50년 전 공업센터 지정과 함께 서서히 죽어갔다. 공업도시로 압축성장하는 과정에 안타깝게도 강은 썩고 있었다. 경제적 외형을 부풀리면서 혈관이 혼탁해지는 것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급기야 2000년 여름 숭어, 붕어 등 각종 어류 1만5000 여 마리가 폐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울산시는 여기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강이 살아야 도시가 산다’는 절대절명의 ‘태화강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다. 생활 오폐수가 강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완벽한 하수처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상류 축산 농가에 폐수 저장을 위한 탱크가 설치됐으며 강바닥의 오염물질을 끌어내는 작업을 해마다 실시했다.

 여기에 태화강의 명물인 십리대숲을 고스란히 되살려 공원화 했고 시가지 둔치를 시민들 누구나 와서 즐기게 만들었다. 현재 태화강은 세계 어느 도시의 강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했다.

 자취를 감췄던 연어가 돌아오고 철새들이 안식처로 선택하는 강이 됐다. 오소리가 살고 수달도 산다. 십리대밭에 부는 바람소리, 선바위의 물그림자는 시민의 가슴에 향수를 자아내고 정주의식을 높인다. 이쯤 되면 공업화 과정에서 ‘공해도시’라는 이미지로 고착됐던 울산이 ‘에코시티’라는 새 얼굴을 얻게 됐다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한분옥 시인, 수필가
한국예총 울산지회장

 사람의 인생은 식물의 잎처럼 피고 지지만 식물의 뿌리와 씨앗에 담긴 생명력은 다함이 없음을 믿는다. 오늘의 태화강은 쉼없이 흘러 바다에 이르지만 억만년 세월을 이 땅에 사는 사람들과 호흡하며 그들의 속 달래기를 마다않고 흘러 갈 것이다. 태화강의 부활은 에코시티 울산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부산·창원을 거쳐 전국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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